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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의 말과소통] 개혁적 보수와 박근혜의 불통

등록 2013-01-14 19:24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국정 최우선 과제는 경제를 활성화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하며 사회 질서와 기강을 확립하는 데 있다. 국민이 기대하는 변화와 개혁이 이 분야에 집중돼 있다.”

20년 전, 취임을 앞둔 김영삼 대통령 당선인은 거듭 ‘안정 속의 개혁’을 강조했다. 개혁은 추진하겠지만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놓치지 않겠다는 얘기다. 개혁적 보수의 길이다.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1987년 이후 치러진 여섯 차례 대선 가운데, 박근혜 당선인과 처지가 가장 비슷한 사람이 김영삼 대통령이다. 두 사람의 성향이나 경험, 의식 등의 차이와는 별개로 시대 상황과 스스로 내세운 정치적 정체성이 그렇다.

물론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 과제는 큰 차이가 있다. 김영삼 정권이 민주주의의 제도화와 관치경제의 전환,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면, 박근혜 정권은 내실 있는 복지국가, 경제 민주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 기반 강화 등을 이뤄내야 한다. 사회통합이라는 공통 과제도 그 내용은 같지 않다. 당시에는 오랜 군사독재의 유산을 청산하는 것이 시급했던 반면, 지금은 양극화를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개혁적 보수는 쉽지 않다. 개혁을 밀고 가면 보수세력이 이반할 수 있고, 이들의 뜻에 맞춰 가려다 보면 개혁이 실종한다. 그래서 ‘반짝 개혁’이 아니라 임기 초·중반에 기존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김영삼 정권은 이 점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금융실명제 실시와 하나회 등 군내 사조직 청산 등의 성과가 있었음에도 기득권 구조는 오히려 유지·강화됐다. 아이엠에프 경제위기와 최악의 남북관계가 임기 말을 장식한 것은 개혁 실패와 맞물려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출발을 어떻게 하느냐가 정권의 성패에 열쇠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공약 이행과 사회적 자본(신뢰)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모습을 보면, 나름대로 강하지는 않을지라도 지속적인 개혁 행보를 할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의 말과 행동은 개혁과 여전히 거리가 있다. ‘한 방향의 정부(1.0)를 넘어 쌍방향의 정부(2.0)를 구현하고 개인별 맞춤행복을 지향하는 정부 3.0을 열겠다’고 하지만 실제 태도는 1.0 수준에 머문다. 그가 다른 사람과 허심탄회하게 정책 방향을 논의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인사와 정책 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국민은 알지 못한다. 그가 ‘국정운영 중심축’의 하나로 제시한 ‘경제부흥’은 ‘잘살아보세’라는 구호처럼 1960~70년대에 쓰던 시대착오적인 용어다. ‘국민안전’ 또한 군사정권을 포함한 모든 보수정권이 ‘법질서’를 내세우면서 국민을 억압한 전례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기자회견을 꺼리고 주변 사람에게도 언론 접촉을 피할 것을 강요하는 게 조심성 때문만은 아니다. ‘개혁의 독’인 강경 우파와 거리를 두지 않고 조금씩 가까워지는 조짐도 보인다.

사회통합과 국민통합은 당위이고, 소통은 필수다. 김영삼 대통령은 한때 국민 지지율이 90%를 넘었으나 결국 실패했다. 개혁의 뜻은 있었으나 국민과 함께 해나가려는 의지가 부족했던 게 원인 가운데 하나다. 지금의 과제는 그때보다 어렵고 국민의 수준은 더 높아졌다. 개혁적 보수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말과 소통에 대한 태도부터 달라져야 한다. ‘불통즉통’(不通卽痛·안 통하면 아프다)이라고 했다. ‘부드러운 독재’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의 모습으로는 안 된다.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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