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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박근혜의 거울’은 몇 개인가 / 오태규

등록 2013-02-07 19:16

오태규 논설위원
오태규 논설위원
수는 남북으로 분열된 위진남북조 시대의 중국을 통일했으나, 대운하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와 고구려 침략 전쟁을 일으켜 국력을 소모했다. 민심이 흉흉해지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런 혼란을 수습하고 들어선 나라가 당이다.

당은 흩어진 민심을 다독이고 통합하는 일에 주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중 2대 황제인 태종 이세민의 업적이 가장 빛났다. 그가 통치했던 24년(626~649년) 동안 정치, 경제, 문화·예술, 군사 등 여러 방면에서 황금시대를 누렸다. 후대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그의 연호를 따 ‘정관의 치’라고 칭송했다.

<정관정요>는 정관의 치의 비법을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후대에 제왕학 및 참모학의 참고서로 평가받으며 중국뿐 아니라 이웃 나라 통치자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일본의 에도 막부 300년 화평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이 책으로 통치술을 배웠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서가에도 이 책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이 책은 당 태종과 신하들의 대화를 토대로 하고 있으나, 사실상 태종과 신하 위징, 두 사람의 문답집이라고 할 수 있다. 태종은 자신에게 온갖 직언을 마다하지 않은 충신 위징이 죽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하게 할 수 있고, 고대 역사를 거울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나의 득실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 나는 일찍이 이 세 종류의 거울을 구비하여 나 자신이 어떤 허물을 범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였다. 지금 위징이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거울 하나를 잃은 것이다!”

태종은 세 개의 거울 가운데 사람을 가장 중시했다.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스스로 먼저 간언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항상 간언하는 자가 하는 말이 내 생각과 일치하지 않아도 그가 나를 범하였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소. 만일 그 즉시 질책한다면,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전전긍긍하며 내심 두려워할 것이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감히 다시 간언을 할 수 있겠소.”

이 시점에 당 태종과 정관의 치, 정관정요, 위징이 떠오르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철학, 언행과 너무 대비되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선거 전과 달리, 당선 이후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것 같다. 그게 대표적으로 불거진 게 연속된 인사 실패와 정부조직 개편 과정의 독선이다. 개인 비리가 있는 청년위원회 위원의 선정, 언론계와 사법부의 집단적 거부 대상인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과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선, 재산 형성과 아들 병역 의혹이 많은 김용준씨의 총리 후보 내정 파문이다. 소통과 검증의 부재라고 할 수밖에 없다. 15년 동안 멀쩡하게 작동해온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의 지식경제부 이관, 차관급 청와대 경호처의 장관급 경호실 격상도 마찬가지다.

더욱 심각한 건 정치권과 언론의 문제제기를 한마디로 깔아뭉개는 ‘불청의 지도력’이다. “내가 약속하면 여러분은 지켜야 한다” “오랫동안 생각한 것이니 그대로 해달라” “인사청문회 과정이 신상털기 식으로 간다면 과연 누가 나서겠나”라는 발언 속에 불통의 ‘일인주의’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당 태종은 3개의 거울을 갖고도 말년에 사치와 방탕에 빠지는 등 끝이 좋지 않았다. 올림머리와 단아한 옷차림만 비추는 하나의 거울만 가지고 있는 듯한 박 당선인의 앞날이 걱정된다. 지금 그에게 꼭 필요한 건 치장용 거울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언행을 비춰보는 역사와 충신이라는 두 개의 다른 거울일 것이다.

오태규 논설위원 트위터·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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