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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의 말과소통] ‘불통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등록 2013-02-11 19:13수정 2013-02-11 20:37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설 민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기대는 하지만 잘할지 걱정스럽다’ 정도가 될 것 같다. 그의 존재감은 선거 때보다 약해졌고, 불통 이미지와 인사 문제 등에서 보여준 미숙함이 부각된 상태다.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동력이 떨어진 듯하다.

엄혹한 시기다.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유명한 희곡이 있다. 궁지에 몰린 나이 든 외판원이 아들에게 보험금을 남겨주려고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아 자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기 미국이 무대다. 문학작품에서나 다뤄지던 이런 일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수시로 벌어진다. 돈 때문에 가족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도 드물지 않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그때는 곧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가 않다.

박 당선인은 ‘국민행복 10대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가계 부담 덜기,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 교육비 걱정 덜기,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정책 착실하게 추진, 창조경제를 통한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일자리 늘리기, 근로자의 일자리 지키기, 국민안심 프로젝트 추진,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의 경제민주화, 지역 균형 발전과 대탕평 인사 등이 그것이다. 잘 기억해둬야 할 내용들이다. 대체로 합리적인데다 많은 사람의 관심과 일치하는 것들이어서, ‘책임 있는 말’의 첫째 조건인 규범적 타당성을 충족한다. 이제 보여줘야 하는 건 진정성이다. 공약을 구체화하고 담론을 확산시켜 실천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논의는 쪼그라들고 몇몇 공약은 파기해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불통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왜 그럴까. 박 당선인의 권위주의적 태도가 가장 큰 원인이다. 그는 대중 앞에 잘 나서려 하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국가주의가 어른거린다. 국가의 이익이 가장 중요하고 국가의 중심은 자신이므로, 필요한 것은 ‘고독한 결단’뿐이라는 태도다. 자신을 ‘부동의 원동자’로 여기는 듯하다. ‘내가 약속하면 인수위 여러분이 책임져야 한다’고 한 그의 말에는, 자신은 결정하는 사람이지 소통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국민행복 10대 공약’도 자신이 판단해서 국민에게 베푸는 것이 된다. ‘누가 뭐라든 역사가 나를 평가할 것’이라고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전자가 이어지고 있다.

새누리당과 보수세력도 책임이 있다. 새누리당은 정권을 재창출한 주역이다. 그럼에도 박 당선인의 위세에 눌린 듯 중요 사안에서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지레 겁먹고 소통을 포기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일부 보수세력은 ‘선거가 지나갔으니 공약에 구애받지 말라’고 압박한다. 이런 상황은 박 당선인의 권위주의를 더 부추긴다. 뒤틀린 구조가 굳어지는 것이다. ‘불통의 덫’이다.

해법은 소통 강화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박 당선인은 스스로 들어간 골방에서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공평·정의·공정·민주화는 시대정신이다. 개혁과 국민통합은 필수이며, 토론과 갈등이 없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내가 결정할 테니 당신들은 실천하라’가 아니라 ‘함께 결정하고 함께 실천하자’가 돼야 한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빨리 인정하는 것이 이기는 길이다.

박 당선인의 권력은 지금이 가장 강하고 갈수록 줄어든다. 잘못인 줄 알면서 바꾸지 않으면 나중에는 하려고 해도 힘에 부쳐 못하게 된다.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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