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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나쁜 대통령’이 남긴 것들 / 김이택

등록 2013-02-14 19:11수정 2013-02-15 10:18

김이택 논설위원
김이택 논설위원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전개되는 상황이 답답하다. 엠비는 으레 해왔듯이 오바마에게 전화하고 말대포 쏘아대는 게 고작이다. 북한을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고 일부에선 핵무장론까지 나오지만 정작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엠비 정부 5년간 남북관계는 파탄 났고, 한반도는 다시 긴장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열흘 뒤면 엠비의 임기도 끝난다. 여론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근까지도 자화자찬에 변명 일색이다. 고·소·영 인사는 “(노무현 정부가) 자료를 넘겨주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고, 감사원의 4대강 사업 지적도 “공무원들이 물일을 이해하지 못한 때문”이란다.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한 대통령’이라며 두 번의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자랑하더니 급기야 “위대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돼 대단한 보람을 느낀다”고까지 했다.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엠비다.

돌이켜보면 그가 망가뜨린 게 한둘이 아니다. 우선 민주주의의 기초를 송두리째 뒤집어놓았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표적사정과 편파수사로 정치검찰이 망가뜨린 검찰조직에 이어 국정원까지 선거개입 의혹을 받는 건 민주정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인권 문외한이 지휘하는 인권위는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됐고, 낙하산 사장들의 ‘충성방송’ 속에 우리는 졸지에 언론자유 삼류국으로 추락했다. 용산참사에 이은 쌍용차 강제진압과 노동자 연쇄자살은 ‘대기업 프렌들리’ 정부가 뭉개버린 서민의 주거권과 노동권의 처참한 현주소다.

4대강 사업은 임기 내 치적용으로 사전 검증 절차도 없이 밀어붙이는 바람에 경제에도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22조원을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지키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썼다면 매년 1만5000명을 넘나드는 자살자 중 상당수 생계곤란자의 목숨은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는 한반도 시계를 완벽히 2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 94년 1차 북핵 위기 때도 우리는 클린턴 정부가 한반도 국지전을 감수하고 북폭을 준비중이었음을 알지 못한 채 걱정 말라고 큰소리치는 대통령 말만 듣고 있었다. 이제 한반도 평화를 얻으려면 더 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북핵 위기의 책임을 엠비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이 핵 능력을 키우는 동안 섣부른 ‘붕괴론’을 앞세워 사실상 뒷짐만 지고 있었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사이 북한의 자원은 줄줄이 중국으로 넘어갔고, 안보 위기는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기 어려워졌다. 유무형의 정치·경제적 손해는 앞으로도 천문학적 수준에 달할 것이다.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고 국민들은 전력 불균형 위험에 내몰리는 상황이 됐는데도 엠비는 여전히 “북한 주민의 변화가 시작됐다”며 접신한 무당처럼 황당한 주문만 외우고 있다.

돌이켜보면 경제 살린다면서 서민경제 망쳐놓고, 법·인권·원칙보다 가족사랑·동문사랑을 앞세웠으며, 숱한 의혹 사건에서 자기는 빠지고 부하들만 감옥과 법정에 보낸 참 ‘나쁜 대통령’이었다.

그가 남겨놓은 나쁜 유산들이 새 정부에서도 정리될 조짐이 안 보인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는 문화방송 사태는 정부 출범 뒤를 기다린다고 치자. 조직 차원의 선거개입 의혹이 속속 드러나는 국정원 사건까지 박근혜 당선인 쪽이 모른 척하는 건 사실상 정보정치의 구태를 용인하는 꼴이다.

민주통합당이 새누리당과 공통 공약을 입법화하기로 한 건 옳은 선택이다. 그러나 선거로 정권 잡는 걸 목표로 하는 정당이 선거의 공정성이 흔들리는데도 바로잡지 못한다면 ‘무능야당’ ‘불임정당’ 소리 듣기 딱 좋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관련영상] ‘북핵’,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한겨레캐스트#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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