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봄날은 온다

등록 2013-02-14 19:11

오래전 어느 뉴스에 ‘하천 전투기’가 등장한 적이 있다. 미국 제너럴 다이내믹스가 1964년부터 1976년까지 562대를 생산한 이 전투기의 본명은 ‘F111’이다. 멀쩡한 제 이름 두고 다른 것으로 방송 전파를 탄 까닭은 엉뚱한 데 있었다. 뉴스를 전한 아나운서가 로마자 ‘F’(에프)와 숫자 ‘111’을 한자 ‘下川’(하천)으로 오독한 것이다. 육필 원고가 대부분이던, 한자를 섞어 갈겨써 ‘해독’이 필요했던 시절에 벌어진 일이다. 비슷한 시기에 ‘춘래불이춘’이라 구성지게 읊은 방송인도 있었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胡地無花草)/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네(春來不似春)’의 ‘似’(같을 사)를 ‘以’(써 이)로 잘못 보았기 때문이었다.

‘춘래불사춘’이라 하지만 입춘이 지났으니 봄의 문턱이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봄’을 만났다. 슈만의 ‘봄’은 트럼펫으로 봄의 열망을 드러내며 씩씩하게 시작했고, 바이올린 선율로 새들의 지저귐을 담아낸 비발디의 ‘봄’은 싱그러움으로 빛났다. 흔히 봄을 ‘여인의 계절’이라 하지만 봄날의 여인이 아름답게만 읽히는 것은 아니다. 손로원의 노랫말에 박시춘이 가락을 입혀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의 ‘연분홍 치마’는 왠지 처연하고, ‘씹어 무는 옷고름’은 봄날 보내는 이의 절절함을 더한다. 이은상이 노래한 ‘봄 처녀’에는 ‘새 풀 옷 입고’ 날갯짓하는 ‘봄처녀나비’의 팔랑거림이 ‘하얀 구름 너울’에 겹쳐 보이는 듯하다.

봄의 ‘말밭’에는 여느 계절에 없는 게 있다. ‘봄을 맞아 이성 관계로 들뜨는 마음이나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봄바람이 본보기이다. 그저 부는 바람인 가을(겨울)바람과 다른 것이다. 봄기운, 봄나들이, 봄노래, 봄놀이, 봄맛, 봄소식 따위도 다른 철에는 나타나지 않는 조어다. 방 한쪽의 매화가 수줍은 듯 하얗게 꽃망울을 터뜨린다. 그러고 보니 오는 월요일은 우수다. 때는 바야흐로 봄, 봄날은 온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한겨레 인기기사>

‘삼성X파일 폭로’ 노회찬 집유 확정…의원직 상실
청소일보다 더 힘든 콜센터…“월급은 욕 먹은 값”
독일 연구소 “북 핵실험 40kt 위력”
‘법무부서 민’ 후보들, 추천위가 걸러냈다
‘멋진’ 사진 뒤에 감춰진 불편한 이야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