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2010년 3월11일 칠레 국민들이 퇴임하는 여성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 일을 기억해보자. 수도 산티아고 대통령궁 발코니에서 작별을 고하는 그에게 국민들은 “대통령 고마웠어요. 2014년에 다시 만나요” 하며 환호했다. 임기 말 85%의 지지율을 기록하고도 단임제에 묶여 퇴임하는 그에게 5년 뒤 다시 출마해달라고 요청하는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1951년생인 바첼레트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1952년생)과 나이가 비슷하지만 성장 과정은 많이 달랐다. 공군 준장 출신으로 아옌데 정권에서 활동한 그의 아버지는 군사쿠데타 세력한테 ‘국가반역죄’로 체포되었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다. 바첼레트는 대학 재학중 피노체트 정권에 맞서 사회주의 청년단 활동을 하다 역시 붙들려 고초를 겪었다. 그 뒤 국외로 추방되었다가 민주화 이후 귀국하고 사회당에 들어가 정치 이력을 쌓았다.
대통령으로서 바첼레트의 성공은 무엇보다 수평적 민주적인 관계 속에서 적극적으로 소통한 덕분이었다. 대통령 취임 첫해에 그는 정치적 난관에 부닥쳤다. 칠레 교육체제에 불만을 가진 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구리광산 노동자들은 파업에 들어갔다. 산티아고 대중교통 체계의 결함으로 지하철 질식 사망자가 나오자, 화염병 시위까지 벌어졌다. 이런 사태를 하나하나 해결해나간 것을 두고 여성사회주의인터내셔널 총재였던 피아 로카텔리는 “바첼레트가 민주주의와 거리에 나오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바첼레트는 대통령에 앞서 국방장관을 할 때부터 부드럽고 인간적인 지도력을 보였다. 그는 정치 개입을 일삼아온 군부 지도자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했다. 보복하지 않고 포용했다. 군대를 사열할 때 딱딱하게 거수경례를 붙이는 군인들한테 볼 키스를 했다. 결국 군부 최고 실력자가 ‘군부가 칠레 민주주의를 뒤엎는 일은 결코 다시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도록 만들었다.
핀란드 여성 대통령인 타르야 할로넨도 2012년 퇴임 때 80%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의 성공 비결 역시 수평적 민주적인 지도력이었다. 그는 ‘무민 마마’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그것은 늘 느긋하며 아이들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만화영화의 엄마 캐릭터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들이 단순히 여성이라서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배려와 소통에 능숙하다는 여성의 특징을 잘 살려 민주적 지도력을 발휘한 것이 국민들한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국정 동력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게 옳겠다. 권위주의적 동원과 통제가 먹히지 않는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겠다.
오는 25일 박근혜 당선인의 취임과 함께 우리도 여성 대통령 시대가 열린다. 그런데 마음 편하게 기대를 걸기가 좀 어렵다. 정권 인수, 인선 과정이 온통 불통, 폐쇄, 밀봉, 권위, 고집 시비로 얼룩진 까닭이다. 여성 대통령이라고 해서 여성성의 장점은 찾아보기 어려우니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청나라 말기 서태후와 조선 후기 예순, 명정, 효유 대왕대비 등 여성이 권력을 잘못 움켜쥐었다가 환관정치 등의 폐해를 빚었던 일까지 떠올리고 싶진 않다.
미첼 바첼레트(현 유엔여성기구 총재)가 박 당선인의 25일 취임식에 참석한다고 한다. 차제에 우리 정치인들도 여성 지도력에 관한 새로운 영감을 얻었으면 한다. 바첼레트는 “여성은 권력 획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맡은 임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권력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점에서 남성과 다르다. 따라서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도 적을 만들기보다 서로간의 호의와 결속을 중시하게 된다. 이게 여성 정치인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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