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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목로주점을 추억하며

등록 2013-02-21 19:17

광어와 우럭은 물론이고 숭어와 병어도 회 떠서 먹을 수 있는 곳, 동태전과 해물버섯완자전 따위의 갖가지 저냐를 먹을 수 있는 곳, 꼬막과 생골뱅이를 맛보며 바다 내음을 느낄 수 있는 곳, 멧돼지와 메추리, 군참새(참새구이)를 꼬치구이로 차려내는 흔치 않은 곳. 거기는 ‘김씨가 30여년 전 빈털터리로 상경해 손수레 꼬치장사로 돈 모아 20년 전 작은 가게를 차려 600명이 앉을 수 있는 큰 업소로 키워낸 곳’이었다.(ㄱ신문) 말 그대로 ‘육해공’을 싼값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 주머니 가벼운 이들의 발길이 잦던 그 집 차림표를 다시 들여다보니 ‘그때’ 먹고 마시던 것들이 새삼스럽다.

차림표에 적혀 있는 ‘쭈꾸미’, ‘꼼장어’, ‘오돌뼈’는 주꾸미, 곰장어(먹장어), 오도독뼈로 사전에 올라 있는 낱말이다. ‘모래집’의 사전 뜻풀이는 ‘1. 모래를 이용하여 지은 작은 집. 2. 사형 주조(모래로 만든 거푸집)의 일부분이 깨어지며 주물 안에 끼어들어서 생긴 결함. 3. 양수가 들어 있는 태아를 둘러싼 얇은 막(양막)’이니 모래주머니 또는 닭똥집(닭의 모래주머니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하는 게 규범에 맞는다.(표준국어대사전) ‘정종’(正宗, 마사무네), ‘가이바시라’(貝柱)는 일본어에서 온 말이기에 청주, 조개관자(패주)로 다듬은 표현이다.(국립국어원)

영화감독인 후배 등과 어우러진 어느 날, 그 자리에서 만난 당시 전공의 과정을 밟던 이가 보낸 문자메시지 ‘우리가 처음 만난 게 그곳이었는데 거기가 불타 사라지다니…’ 한 줄이 그 집 차림표를 찾아보게 해주었다. 불현듯(불을 켜서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갑자기 어떠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모양)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전문의가 된 그와 대작했던 거기는 목로(널빤지로 좁고 기다랗게 만든 상)를 앞에 두고 정담 나누는 목로주점이었다. 그 집은 지난 일요일 밤 불에 타 사라졌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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