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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육영수 리더십 / 백기철

등록 2013-02-26 19:21수정 2013-02-27 10:04

백기철 논설위원
백기철 논설위원
정치인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보며 드는 의문 중 하나는 왜 박정희 대통령 따라하기만 그리 열심일까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육영수씨를 따라하면 안 될까, 육영수야말로 따라할 게 많은데,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와중에는 박근혜 캠프의 한 중진에게 육영수 따라하기가 어떻겠느냐고 말한 적도 있다. 그 인사는 수첩에 열심히 적어 갔는데, 그 뒤 어찌됐다는 말을 들어보진 못했다.

박 대통령에게서 박정희의 그림자가 강렬한 것은 아마도 그가 15년 동안 정치인의 삶을 살아온 탓일 것이다. 육영수는 퍼스트레이디였을 뿐이다. 박 대통령은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삶을 이미 34년 전에 마감했다. 그렇게 보면 박 대통령은 각각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였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한데 이어받아 살아가는 셈이다.

언젠가 박 대통령 일가의 일대기를 보면서 새삼스러웠던 것은 육영수가 국모로 추앙받던 시절 그의 나이가 불과 40대였다는 점이다. 37살에 퍼스트레이디가 됐고, 12년간 청와대에서 생활하다 49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육영수를 국모로 떠받들던 유신의 추억은 상당부분 독재정권의 상징조작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육영수에 관한 이런저런 일화들은 그가 단순히 만들어진 국모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유신 시절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이철 전 의원의 아버지에 얽힌 일화는 유명하다. 이 전 의원 아버지는 박 대통령의 하나뿐인 남동생인 박지만씨의 고교 은사였다. 스승의 날을 맞아 학교 선생님들을 청와대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날, 이 전 의원 아버지는 홀로 학교에 남았다. 아들이 시국사건으로 수배중인데 무슨 낯으로 청와대를 갈 수 있나 해서였다. 육영수는 어찌 알았는지 차를 보내 이 전 의원 아버지를 청와대로 모셔서 극진히 대접했다는 게 이 전 의원의 술회다.

대통령 후보 시절 박 대통령 모습을 본 한 외국 특파원은 왠지 그의 얼굴이 어둡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흉탄에 스러져간 부모를 대신해 오랜 세월 홀로 견뎌온 삶의 무게가 얼마나 버거웠을까. 25일 취임식 뒤 청와대로 들어서는 박 대통령의 환한 미소에는 그 세월을 견뎌온 데 대한 대견함이 묻어나는 듯했다.

가뜩이나 외로운 세월을 보낸 박 대통령이 구중궁궐 청와대에 갇혀 ‘나홀로 대통령’이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25일 밤 만찬에서 처음으로 귀고리를 한 박 대통령 모습은 보기 좋았다. 가끔은 멋도 부리고 낭만을 찾는 여유도 필요하다. 청와대 밖으로 나와 영화도 보고 만난 것도 먹고 사람도 만나는 여유를 가져봄 직하다. 즐거운 대통령이 국민도 즐겁게 할 수 있으니까.

박 대통령에게는 지금 육영수 리더십이 필요해 보인다. 육영수 신화가 상당부분 상징조작일 수 있지만 굳이 말하자면 육영수 리더십은 소통과 화합, 배려 정도가 될 것이다. 박정희 리더십은 강한 카리스마와 추진력, 과단성이다. 박정희의 개발독재 리더십이 지금 통할 리 없다. 박 대통령이 대선 뒤 자꾸 아버지를 따라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무슨 육영수 머리를 한다고 해서 육영수 스타일이 되는 건 아니다. 선글라스를 낀다고 해서 박정희가 되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이 힘없는 자, 고통받는 자, 소외된 자들을 위한 어머니 리더십을 발휘했으면 한다. 생전의 육영수라면 대선에서 자신을 찍지 않은 48%에게 먼저 다가가 따뜻이 포옹했을지 모른다. 독재에 항거하다 30년 세월이 흐른 뒤 다시 그 독재자의 딸이 집권하는 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처참함도 육영수라면 조금은 헤아렸을 것이다. 박 대통령에게 육영수의 따뜻한 마음을 따라해 보길 권한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관련영상] 박근혜 정부와 '박정희 유전자'의 부활 (한겨레캐스트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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