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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왜 모양 똑같아요” ‘영애 박근혜’ 한마디에…

등록 2013-02-26 19:25수정 2013-02-27 10:22

울산의 단독주택이 ‘영애 박근혜’가 다녀간 뒤 옥상에 삼각형 구조물을 얹는 형태로 바뀌었다. 울산 시민들은 그 집을 ‘근혜양의 비둘기집’이라고 불렀다. 이정록. 광주비엔날레 누리집.
울산의 단독주택이 ‘영애 박근혜’가 다녀간 뒤 옥상에 삼각형 구조물을 얹는 형태로 바뀌었다. 울산 시민들은 그 집을 ‘근혜양의 비둘기집’이라고 불렀다. 이정록. 광주비엔날레 누리집.
[한겨레 프리즘] 근혜양의 비둘기집 / 권혁철
“공무원들이 너무 말을 잘 들어요.”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났을 때 “시민단체에서 일할 때와 비교하면 뭐가 다르냐”고 물었더니 나온 답이다. 이어지는 박 시장의 설명이다. “시민단체는 수평적 조직문화여서 제가 지시를 해도 잘 먹히지 않을 때가 있어요. 시민단체 시절 간사에게 ‘이것 좀 알아봐라’고 이야기하고 1주일 뒤에 확인하면 그 일에 손도 안 대고 있어요. 그럴 땐 ‘그냥 해본 말이 아니라 업무상 지시이니 반드시 해야 한다’고 채근해야 했지요.”

이와 달리 서울시 공무원들은 외형상 박 시장의 말을 하늘처럼 받든다. 서울시는 각종 회의와 결재 때 박 시장이 지시를 하면 시청 전 부서, 16개 투자·출연기관, 25개 자치구에 신속하게 전파한다. 해당 부서에서는 시장 지시사항에 연번을 매겨 ‘지시 일자’ ‘지시 내용’ 등으로 꼼꼼하게 관리하고, 진행·완료 등 이행 상황을 보고한다. 취임 초기 박 시장이 새로운 발상을 위해 가볍게 꺼낸 아이디어까지 공무원들이 지시사항으로 받아들여, 실행 방안을 만드느라 부산을 떠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격의 없는 소통을 강조해온 박 시장은 공무원들을 만날 때마다 “시장이 뭐라고 한다고 무조건 따르지 말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기꺼이 말해 달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서울시 국·실장급 고위 공무원도 시장 앞에서 ‘그건 아니다’라고 말하긴 어렵다고 한다. 인사권자가 ‘아닌 것은 노(NO)라고 말해 달라’고 아무리 당부해도 뒤끝을 염려해 조개처럼 입을 다무는 게 공무원들의 속성이다.

상명하복의 조직문화가 뿌리깊은 공무원 사회를 향해 박근혜 대통령은 “제가 약속하면 여러분(정부)은 지켜야 한다”고 취임 전 당부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와 각종 현장을 방문하며 내리는 지시사항은 정부가 국무총리 훈령으로 이행 상황을 철저히 점검한다.

‘내 말에 토를 달지 말라’는 대통령 앞에서 어떤 간 큰 공무원들이 다른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앞으로 공무원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박 대통령의 사소한 말 한마디까지 무조건 집행하려고 들면, ‘비둘기집’ 소동이 재현될까 봐 나는 걱정된다. 비둘기집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고향 울산에서 겪은 일이다.

울산의 단독주택이 ‘영애 박근혜’가 다녀간 뒤 옥상에 삼각형 구조물을 얹는 형태로 바뀌었다. 울산 시민들은 그 집을 ‘근혜양의 비둘기집’이라고 불렀다. 이정록. 광주비엔날레 누리집.
울산의 단독주택이 ‘영애 박근혜’가 다녀간 뒤 옥상에 삼각형 구조물을 얹는 형태로 바뀌었다. 울산 시민들은 그 집을 ‘근혜양의 비둘기집’이라고 불렀다. 이정록. 광주비엔날레 누리집.

울산의 단독주택이 ‘영애 박근혜’가 다녀간 뒤 옥상에 삼각형 구조물을 얹는 형태로 바뀌었다. 울산 시민들은 그 집을 ‘근혜양의 비둘기집’이라고 불렀다. 이정록. 광주비엔날레 누리집.
울산의 단독주택이 ‘영애 박근혜’가 다녀간 뒤 옥상에 삼각형 구조물을 얹는 형태로 바뀌었다. 울산 시민들은 그 집을 ‘근혜양의 비둘기집’이라고 불렀다. 이정록. 광주비엔날레 누리집.
박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대행을 하던 1978년 여름, 당시 ‘영애 근혜양’이 울산을 다녀갔다. ‘영애 근혜양’은 차를 타고 지나가다 “울산 집들은 왜 모양이 똑같아요”란 한마디를 수행원에게 툭 던졌다고 한다. 당시는 아파트가 대중화되기 전이라 단독주택이 대세였다. 요즘은 단독주택을 개성 있게 짓지만 그때는 설계도 하나로 무더기로 지어서 집 모양이 같았다. 네모난 옥상에 앞쪽 벽면에 마감재로 돌을 붙인 1층 양옥이었다.

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건축 다양성을 확보하라’는 ‘영애 근혜양’의 지시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울산시는 옥상 중간에 삼각형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어 모양을 내라고 요구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준공검사나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무심코 던진 돌에 힘없는 개구리가 맞아 죽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옥상에 삼각형 구조물을 얹으니 영락없이 비둘기집을 닮아서, 내가 살던 동네 아주머니들은 새로 지은 집들을 ‘근혜양의 비둘기집’이라고 불렀다.

35년 만에 이제는 ‘대통령의 비둘기집’이 곳곳에 등장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박 대통령이 “제가 약속하면 여러분은 지켜야 한다”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박 대통령이 “공무원은 공공의 수호자, 공공 이익의 대변자다. 제 지시가 잘못됐을 경우에는 ‘그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불이익을 당하면 제가 여러분을 지켜드리겠다”고 말했으면 좋겠다. 소통은 독선을 막는 유일한 힘이다.

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nura@hani.co.kr

[관련영상] 박근혜 정부와 '박정희 유전자'의 부활 (한겨레캐스트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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