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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콩 한쪽의 행복 / 정영무

등록 2013-02-28 19:30

정영무 논설위원
정영무 논설위원
예술가가 작품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가졌듯이 우리는 모두 행복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졌다고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에서 썼다. 세네카가 인간은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도 하늘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듯이,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도 행복은 있었다고 한다. 행복이란 주관적이고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처럼 가슴 설레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행복은 국민(57회) 다음으로 20회 호명됐다. 경제와 문화가 각각 19회였다. 경제주체들이 힘을 모으고 경제부흥을 이룰 때, 노후가 불안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 될 때, 배움을 즐길 수 있고 일을 사랑할 수 있는 국민이 많아질 때, 국민이 편안하고 안전할 때 국민행복은 높아진다고 한다. 경제적 안정과 개개인의 잠재력 개발, 안전 등을 행복의 핵심 요소로 들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통합한 국민행복연금을 비롯해 국민일자리행복회의, 행복가족프로그램, 행복주택 건설, 행복교육, 행복한 임신 등 국정과제 곳곳에도 행복 스티커가 나붙었다.

정부가 감히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나서는 게 말이나 되냐는 반론도 있지만, 양보다 질을 추구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법하다. 우리는 지난해 세계 경제 15위, 1인당 국민소득 2만2720달러를 기록했지만 행복하다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 행복지수에서 36개국 가운데 24위, 미국 갤럽의 행복감 설문조사에서는 148개국 가운데 97위에 그쳤다.

너무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물음이 아니라면 행복도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할 정도로 연구와 자료가 축적된 상태라고 한다. 바보들이나 행복을 추구한다는 프랑스 사람들도 있지만, 국가 비교를 보면 그러한 문화적 차이나 국민성 차이가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정도로 작다. 사람들이 대체로 꼽는 행복의 구성요소는 첫째 경제적 안정이고, 그다음이 원만한 가족관계와 어울림 그리고 건강이다. 생활수준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행복은 소득보다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상황, 건강, 가치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영국의 심리학자 로스웰과 인생상담사 코언은 이를 개인적 특성과 생존 조건, 상위 욕구라는 세 변수의 조합에다 가중치를 부여해 행복지수를 만들었다.

기왕 국민행복시대를 내세웠으니 소득수준과 행복에 관한 로널드 잉글하트 교수의 연구를 눈여겨볼 만하다. 잉글하트는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행복지수가 급속도로 상승하지만 대체로 2만달러대를 넘어서면 소득수준이 높아지더라도 행복감에 큰 변화가 없다고 한다. 실제로 선진국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지속적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2만달러를 결별점으로 거의 상승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적용해보면, 고소득 계층은 소득수준이 높아진다고 해도 행복지수가 별로 높아지지 않는 반면, 저소득 계층은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행복지수가 크게 높아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곧 저소득 계층의 실질적 소득수준을 높이면 우리 국민 전체적으로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부유층에게 행복의 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의 원천을 추구하는 것이다.

어려운 시절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대로 콩 한쪽도 나눠 먹고 살았다. 그 많은 장꾼이 콩 한쪽을 나눠 먹었다는 전설도 낯설지 않았다. 마음 한켠에 정이 흐르고 이웃이 넘치는 전 자본주의 시절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지만,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는 우리 민족의 심성’으로 복원하기에는 시장경제와 시장사회의 노도가 너무 거세다. 지금은 국가라는 이웃이 절실히 필요하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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