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논설위원
오해하지들 말았으면 좋겠다. 난 안철수 지지자가 아니다. 오히려 지난 대선 때 안철수의 ‘밀당’에 지치고 짜증이 난 쪽이다. 귀국하면 한동안은 땀내가 물씬 나도록 진창에서 구르기를 바랐는데, 여전히 말끔한 스킨 냄새만 피울 것 같아 실망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오늘 인천공항에 나가 환영 플래카드라도 펼치고 싶은 건 야권이 한심해서다.
민주당은 두 번이나 연거푸 졌으니 뼈를 깎는 성찰과 반성이 따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기껏 한다는 게 계파와 정파라는 좁은 대롱으로만 세상을 바라볼 뿐이다. 서로 간에 최소한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는커녕 네 탓 타령만 하고 있다. 진보 정당들에서 희망을 찾기는 더 민망하다.
얽히고설켜 있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끊어버려야 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라버린 알렉산더 대왕의 칼이나, 손빈의 쾌도난마처럼. 안철수가 그 잘 드는 칼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안철수가 원내에 진입하고 신당을 만들면 가장 먼저 요동칠 곳은 호남이다. 민주당이 30년 가까이 누려왔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릴 것이다. 주민들은 선택지가 넓어지고, 민주당 정치인들은 편한 세상이 끝난다. 호남의 정치풍토가 바뀌면 영남의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 안철수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굳이 부산 영도 출마가 아니어도 국회 입성만으로 지역구도를 깨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셈이다.
야권 시장에 경쟁자가 나타남으로써 민주당은 살아남기 위한 혁신이 불가피해진다. 반박근혜라는 단일 품목만으로는 도태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기호를 알아내기 위해 철저한 시장조사가 필요하고, 새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할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 크게 지고도 민주당이 달라지지 않은 것은, 반이명박만 외쳐도 되는 야권의 독과점 체제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들도 안철수의 등장으로 야권연대의 핵우산이 벗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젠 자력으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엄혹한 핵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이런 자유시장 체제는 단결보다는 경쟁을, 건설보다는 붕괴를 수반할 것이다. 그러나 낡은 것을 도태시키고 새로운 변혁을 일으키는 ‘창조적 파괴’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 훗날의 더 큰 통합을 위한 분열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안철수 혼자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문재인, 박원순 등 굵직한 정치인의 조기 등장이 필요하고 또 불가피해 보인다. 문재인은 본인의 뜻과 관계없이 한번 더 차출되지 않을까 싶다. 안철수의 흡인력으로 민주당을 빨아들이면 이를 막아낼 방어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원순도 내년 지방선거의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제3의 대안을 찾는 세력들로부터 야권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추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2017년 대선이 조기에 점화되는 셈인데, 야권으로서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에 비하면 문재인이나 안철수의 몸집이 너무 작아 보였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바람직하기로는 이런 경쟁이 일찍 끝나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이들이 한 울타리 아래 뭉치는 것이다. 그러나 두세 차례의 재보궐선거로는 승패가 나기 쉽지 않다. 아마 본격적인 경쟁은 내년 지방선거가 되기 쉬워 보인다. 야당의 분열로 내년 지방선거를 새누리당에 헌납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야당이 거듭나는 게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굳이 피할 일만도 아닐 것이다. 당분간은 그저 다들 무소의 뿔처럼 갈 때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오롯이 각자의 몫이다. 단, 다시 만날 날을 위해 경쟁은 치열하되 예의는 갖추었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김의겸 논설위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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