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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학교는 치안의 대상이 아니다 / 김동춘

등록 2013-03-18 19:14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지난 11일 경산 고교생 자살 사건의 가해학생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 가해학생은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 극히 불안한 심리상태에 있다고 한다. 경찰 수사가 마무리되면 검찰은 이 학생들을 기소할 것이고, 법원은 지난해 대구 자살 학생의 경우처럼 가해학생에게 중형을 구형할 것이다. 과연 그것이 해결책일까?

캐나다의 프레스턴이라는 곳에서는 6000달러의 예산으로 상담원을 고용하여 이틀 동안 아이들에게 연극을 통해 집단 괴롭힘의 고통을 느끼도록 한다고 한다. 연극을 통해 괴롭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실제로 느끼도록 만드는 실험이다. 아이들이 동료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만들자는 취지다. 100개 이상의 학교를 방문한 경력이 있는 상담 전문가는 “이것은 법률적 이슈가 아니라 사회적 이슈다”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는 경찰 총수가 학교폭력을 치안문제로 간주하여 전담경찰관을 배치하고, 교육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학교별로 폭력 건수를 공개하게 하여 압박을 통해 폭력을 줄이도록 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었다. 가해학생들에게 엄벌을 가하거나 교과부 등 유관부처가 84개의 대책안을 나열해서 공무원과 교사들에게 압박을 가해도,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학교나 길거리 요소요소에 시시티브이(CCTV)를 설치하고 상담교사를 배치해도, 교육부 장관이 교사·학부모 모아놓고 토크쇼를 열어도 학교폭력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심각한 형태로 계속되고, 이번 경산의 학생 자살 사건처럼 학교 당국이 상부의 문책을 피하기 위해 폭력 정황을 알고도 덮어두는 일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의 학교는 캐나다와 같은 정도의 교육적 조처를 취할 최소한의 준비조차 없다. 현재 한국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공감을 가르친다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일과 같다. 모든 교육과정이 오직 입시전쟁의 전사 기르기 작전으로 짜여 있는 한국의 학교에서 이러한 연극치료 등 교육적 조처를 취할 준비나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정부의 학교폭력 대책을 보면 좁은 닭장 안에 닭 수십마리 집어넣어 놓고 얌전히 있지 않으면 두들겨 패려는 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지옥 같은 닭장 안의 닭들이 살기 위해 비명을 지르거나 상대방을 쪼아대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학교폭력에서 가해·피해 구분은 무의미하다.

사실 한국에서 집단 괴롭힘은 학교가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온 사회가 강자가 약자를 마구 짓밟도록 가르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자가 된 자들이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자신을 정당화하는 사회에서 어찌 학생들에게 옆 학생의 고통을 돌아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피해자의 항변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조직 내의 불법과 폭력을 고발하면 오히려 배신자라고 보복을 하는 사회에서 어찌 방관자이자 목격자인 대다수 아이들에게 폭력 학생들을 고발하라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교육문제가 치안문제가 되는 일에 대해서는 교육자나 정치가들이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나 교육부 책임자들은 참 얼굴이 두껍다. 오늘날 학교에서 교육이 완전히 실종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인가? 오늘날 정치나 사회, 그리고 학교가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칠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인가?

제발 솔직해지자. 아이들 문제는 본질적으로 어른들이 만든 것이고 사회문제이다. 가해자는 폭력을 행사한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이다. 아이들을 성적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대접해라. 그러면 제대로 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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