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무 논설위원
김능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퇴임하고 부인의 편의점에서 일한다고 화제가 됐다. 김 위원장에겐 아름다운 뒷모습이지만 편의점의 실상은 험난하다. 24시간 돌아가는 편의점은 삶의 최전선에 가깝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예사로 초과근무수당을 떼인다고 한다. 계산이 틀리면 책임져야 하고, 밥 먹을 시간은 물론 잠시 쉴 틈도 갖기 힘들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업주라고 나을 게 없다. 현대판 노예계약이라고 할 정도의 가맹점 본사 입맛에 맞는 계약조건으로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그제 서울 종로구의 한 편의점 앞에서는 숨진 편의점 업주를 추모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경남 거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던 임아무개씨는 1년을 겨우 넘기고 올해 초 자신의 가게에서 31살의 생을 마감했다. 시민단체와 청년유니온 등은 임씨를 전태일 열사에 비유하며 “이 청년도 온몸으로 전국 수십만 가맹점주들의 삶과 고통을 고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험을 살려 2011년 말 편의점을 냈다. 한달에 몇백만원을 보장한다는 본사 직원의 말에 솔깃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상품구입비와 가맹비 등 창업자금을 댔다. 그러나 몇달 지나지 않아 희망은 불안으로 바뀌었다. 본사가 장담했던 유동인구도 순이익도 없었다. 밤늦게는 거의 손님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24시간 운용이 계약상 강제조항이었다. 인건비를 줄이려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일했지만 점점 악화돼 갔다.
일매출 송금제는 그를 사채로 내몰았다. 매일 매출만큼 본사에 현금을 보내지 않으면 미수금에 대한 이자를 내야 한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5년 계약기간을 채우지 않고 그만두면 위약금 5000만원과 창업비용 등을 모두 날리게 되기 때문이다. 본사는 적자영업마저도 용인하지 않았다. 재고 손실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계약해지 예고통보를 받기에 이르렀다.
편의점 업주들은 24시간 영업을 해야 하고 해지 위약금을 크게 물어야 하는 불공정 계약을 강요받고 있다. 그럼에도 달리 생계수단이 없어 울며겨자먹기로 창업에 나선다. 초기 투자비가 적게 들고 기술이 필요 없어 직장을 떠난 베이비붐 세대에다 취직을 못한 젊은 세대까지 뛰어들고 있다. 그 바람에 가맹점 수가 계속 늘어나 본사는 이익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자영업자에게는 무덤이 되고 있다.
불공정 계약을 바로잡아야 할 곳은 공정거래위원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금까지 몇차례 실태조사에 나섰지만 연중무휴 24시간 영업, 중도해지 위약금 조항 등에 대해 유효하다며 뜨뜻미지근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경쟁촉진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보호하는 게 본연의 임무라는 점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그러는 사이 임씨가 남의 일 같지 않다며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는 자영업자 대열은 불어나고 있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다가 자영업에 뛰어든 임씨에게 세상의 벽은 너무 높았다. 비정규직이란 크레바스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어렵다. 프랜차이즈 대기업과의 거래는 덫이 됐다. 임씨가 직장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재기와 재취업의 사회안전망이 받쳐줬더라면, 편의점에서 성실히 일한 만큼 보상을 받았다면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그 어디에도 임씨 편은 없었고 그는 비국민이었다.
그렇기에 설사 경제민주화 구호가 쑥 들어갔다고 해도 세상이 조금은 달라져야 했다. 소신 없는 해바라기 경제부총리에 백억대 재산을 가진 김앤장 출신의 공정거래위원장 체제가 들어서면 한 가닥 남아 있던 희망마저 사라질까 봐 두렵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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