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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신중론과 국정 거버넌스 / 장덕진

등록 2013-03-24 19:19수정 2013-04-14 19:03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들로부터 사석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는 열띤 비판론보다는 차분한 신중론 쪽으로 조금 더 기우는 듯하다. 대선 때 박근혜 후보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던 사람들조차 그렇다. 이유는 두 가지로 모인다. 하나는 동정론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부족론이다. 동정론이란 새 대통령이 꽤 당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다. 정치 말고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고 특수한 개인사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를 가지지도 못했을 그가 국정운영이라는 엄청난 과제 앞에 당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대선 때 박근혜 후보에게 강력하게 반대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 주저앉히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을 수는 없다. 시작과 동시에 흔들리고 있는 새 정부를 더욱 흔들기보다는, 그를 반대했던 국민들의 삶조차 조금이나마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 정부가 되도록 당분간만이라도 약간의 정치적·정책적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어떠냐는 주장이다.

정보부족론이란 우리가 박근혜라는 정치인을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선 때 그를 반대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그를 독재자의 딸이자 유신공주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독재자의 딸이었을 뿐 본인이 독재자였던 것은 아니었고, 유신에 대해서도 역사인식의 문제는 있을지언정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런 것들이 박근혜 비판의 핵심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가 당선을 거머쥐었다는 단순한 사실이 웅변하듯이, 핵심이 아닌 비판은 그에게 별로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당선 이후 계속 하락하고 있는 지지율에서 보듯이 그의 지지자 중 일부는 그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박근혜 후보는 독재자의 딸이 아니라 경제기적을 이끌어낸 대통령의 딸이었고, 원칙과 약속의 지도자였다. 그런데 인사와 정부조직의 난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치가 실종되고 야당과 국민을 상대로 대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박근혜 후보와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비판자도 그의 지지자도 그를 잘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별로 아프지도 않을 비판을 이어가거나 실체와 관계없을지도 모를 열광에 매몰되기보다는 그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이제부터라도 차분하게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이다.

동정론과 정보부족론은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인사와 관련한 예측 불가능성은 최악의 경우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사람을 교체하면 되는 일이지만 앞으로 펼쳐질 재정·복지·안보와 같은 정책 영역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돌이킬 수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민주주의나 복지국가의 커다란 진전을 기대할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가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국정 거버넌스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것은 약속과 원칙을 그렇게도 강조해온 후보 시절 박근혜의 최대 마케팅 요소이기도 했고, 실제로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일 때 지지율은 올랐다. 국정운영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정책 선택의 문제이지만, 그 선택에 어떻게 도달하고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는 거버넌스의 문제이다. 지난 한 달간 후자의 문제에서 보여온 극심한 혼란을 극복하고 어떻게 선택해서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의 체계적 틀을 갖출 강력한 의지는 딱 한 사람, 대통령에게서 나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극복은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신중론은 그리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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