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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극장국가와 유료 관객 / 김지석

등록 2013-03-28 18:53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우리나라에서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모든 면에서 형편없는 나라’와 ‘무한한 힘을 가진 괴물’ 사이를 왔다갔다한다.

지난주 방송사와 금융기관에 대한 사이버테러가 발생하자마자 정부 고위관계자는 북한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북한이 정찰총국 소속 전담부대를 중심으로 1000여명의 해킹조직을 운영하고 있으며 사이버전 능력은 우리 쪽을 훨씬 웃돈다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도 잇따랐다. 3년 전 천안함 사건 때도 비슷했다. 사건 전에는 ‘깡통’ 수준으로 얘기되던 북한의 잠수정이 고도의 기능을 발휘한 것으로 바뀌었다. ‘북한이 아니면 누가 했겠느냐’라는 심증은 금세 ‘북한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한다’는 사실 판단이 돼버린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펴내는 <월드 팩트북> 2013년판을 보면, 북한의 국내총생산은 400억달러(구매력 기준, 세계 103위) 규모로 캄보디아 정도의 수준이다. 1인당 소득은 1800달러(228개 나라·지역 가운데 197위)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의 1인당 소득은 3만2400달러(40위), 국내총생산은 북한의 41배인 1조6220억달러(13위)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의 국내총생산(15조6600억달러)이 우리나라의 9.7배이므로, 북한과 우리의 거리는 우리와 미국의 거리보다 4배 이상 멀다. 그럼에도 ‘초능력 괴물’이라는 북한의 이미지가 끈질기게 유지되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물론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등 몇몇 군사기술에선 우리보다 앞선 듯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중하위 개도국일 뿐이다.

북한을 괴물화하는 심리에는 ‘이해하기 힘든 나라’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행태를 보면 일관성이 아주 강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과시, 주시, 드라마를 통한 권력의 창출’이다.(<극장국가 북한>) 북한 정권은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현란한 장관(스펙터클)을 통해, 북한 주민에게는 도덕적·정치적 슬로건을, 국제사회에는 핵심적인 외교 메시지를 전달한다. 1970년대에 김정일이 정착시킨 이런 모습은 3대 세습이 이뤄진 지금도 그대로 되풀이된다.

핵실험 이후 대규모 지지 집회가 잇따르고, 한-미 군사훈련에 맞서 거친 말과 집단행동이 연출된다. 이런 모든 스펙터클은 권력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핵심 수단으로, 북한 정권 스스로도 취사선택을 할 여지가 거의 없다. “인위적이고 과장된 대중동원의 예술정치로 무장한 극장국가”의 한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 그렇다. 극장국가가 보여주는 드라마에는 항상 거품과 허세가 있지만, 권력의 유지·강화와 직결되는 탓에 외부의 자극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주기적으로 높아지는 것은 대부분 이런 상호작용의 결과다.

한반도 관련국들은 북한의 행태에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다. 자칫 상황을 즉자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서로 큰 대가를 치러야 할 수가 있다. 본의 아니게 값비싼 ‘유료 관객’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방한한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의 말처럼 “지금은 북한을 상대할 때 우리가 압도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강한 쪽에서 꾸준히 신호를 보내면 약자는 응답하기 마련이다. 통일부는 지난주 유진벨재단이 신청한 6억8000만원 상당의 대북 결핵약 반출을 승인한 데 이어 민간 차원의 다른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남북관계 변화를 위한 노력을 상황에 구속돼서 수동적으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적극적 노력을 시사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극장국가의 유료 관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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