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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레스쿨제라블

등록 2013-03-28 18:55

대한민국 학원은 휴일에도 쉬지 않는다. 직장인이 숨 돌릴 시간에 적잖은 학생들은 학원에 가야 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 학원 다녀온 중학생 딸이 상기된 표정으로 ‘아빠, 그거 봤어?’ 한다. 학원에서 벗들과 함께 본 동영상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레밀리터리블’을 패러디한 ‘레스쿨제라블’이다. ‘거금 120만원’을 들여 한 달 반 만에 만들었다는 작품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와 극적인 재미를 위하여 가상으로 연출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레미제라블>의 ‘룩 다운’(Look Down)을 ‘야자! 야자!’로 개사해 사실상 ‘타율’인 ‘야자’(야간자율학습)의 실상을 드러내며 시작하는 이 작품에서 여고생 판틴 양은 ‘1등급의 꿈’이 사라진 안타까움을 노래하고(I Dreamed a Dream), 장발장 군은 선도부원 자베르와 맞서 “(만난 지) 100일 안 된 여자친구와 헤어질 형편”임을 호소한다(The Confrontation). 재치가 엿보이는 합창 “레드(Red) 빨간 펜 줄치고, 블랙(Black) 핵심요약 정리…”(Red & Black)에 이어, “해도 해도 너무하는 대한민국 입시전쟁/ 하지만 곧 봄이 와”(Do You Hear The People Sing)가 교정에 울려 퍼지며 작품은 끝난다.

“지도교사 없이 청소년들이 만든” 기특하고 대견한 작품에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자막 실수가 눈에 띄어서이다. ‘그녀의 며리(머리) 핀’, ‘졸업하기길(하길) 기원하며’ 같은 단순 오타에서 생긴 잘못이 그렇다. ‘답지 보고 했잖아/ 남몰래 배껴(베껴) 왔잖아’, ‘돌아가길 바래(바라)’, ‘완전히 삐졌습니다(삐쳤습니다)’처럼 규범에 어긋난 게 또한 그러하다. 교사 감수를 거친 영어자막처럼 한글자막에도 신경 썼으면 금상첨화였겠다. ‘동영상 조회수 30만 넘으면 즉흥공연’을 약속한 학생들의 뜻은 곧 이뤄질 것 같다. 즉흥공연에 맞춰 ‘자막 실수’ 바로잡은 개정판을 기대해 본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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