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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대처와 포클랜드 전쟁의 상흔 / 정영무

등록 2013-04-11 19:05

정영무 논설위원
정영무 논설위원
<포탄의 섬광>은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한 아르헨티나 병사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기자로 일하던 에스테반은 10여년 뒤 전우의 자살 기도 소식을 듣는다. 상이용사로 힘겹게 살아온 전우의 소식을 통해 에스테반은 잊으려고 애썼던 전화의 고통스러운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분쟁으로 1982년 4월 포클랜드(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 전쟁이 발발하자 에스테반은 18살에 군에 징집된다. 군부독재정권을 위한 애국전쟁에 동원된 에스테반은 전투 이전에 남극해의 추위와 굶주림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극심한 고통과 공포를 견디지 못한 많은 병사들이 적이 아닌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이윽고 교전이 시작되자 아르헨티나군은 첨단 무기와 막강한 화력을 앞세운 영국군에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퇴한다. 군 지휘부는 조국을 위한 영광스러운 전투라고 치켜세웠지만, 돌아간 조국에서는 그들을 반기지도 않았고 영웅으로 대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고통을 가슴에 묻고 오랜 세월 두고두고 후유증을 겪는다.

에스테반이 고발하고자 한 것은 애국심이라는 허울로 포장돼 군부독재자들에게 이용당한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의 비극과 전쟁의 참혹함이다. 에스테반은 “지금도 영국군들이 쏘아대는 포탄의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고막이 찢어지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동료 병사들의 시체가 공중으로 떠오르고 전우들이 죽음보다 더한 공포에 시달리며 절규하는 악몽을 꾸고 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가 실정과 경제난을 모면하려고 무모하게 불을 붙인 전쟁은 군사정권의 실각으로 귀결됐다.

전쟁 승리로 영국의 대처 총리는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이듬해 재집권에 성공한다. 대처는 강력한 리더십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그는 영국병을 치유한다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였고, 나중에 “나는 계속 싸웠고 싸워서 이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포클랜드 전쟁은 영국도 무모하기는 마찬가지였고 양쪽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아르헨티나가 기습적으로 섬을 점령하자 당시 대처 총리의 내각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분출했다. 국민은 피를 원한다는 강경론도 있었지만, 함대를 보내 무력시위만 하자는 쪽부터 전쟁이 아니라 외교적 수단으로 사태를 해결하자는 온건론도 있었다. 하지만 대처는 포클랜드 탈환을 국위를 높이고 보수 강공책에 힘을 보탤 좋은 기회로 여기고 정면승부를 결심하기에 이른다. 영국이 외교나 군사면에서 절대적으로 우세했고, 남미와의 관계 악화를 피하고 싶은 미국이 줄곧 대화로 풀자고 권고하는 등 여러 중재안이 나왔으나 이를 뿌리치고 대규모 원정 함대를 띄웠다.

75일 만에 항복을 받아냈지만 영국군 255명, 아르헨티나군 650명을 제단에 바친 뒤였다. 더없이 가까운 사이였던 레이건이 교전 중에 휴전을 설득하자 대처는 “알래스카가 침공당했다면 당신도 똑같이 했을 것”이라며 일축했다. 아르헨티나에서 대처의 사망 소식에 집단학살 전범이 한 명 줄었다는 냉담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군사정권이나 대처나 무모함에서 차이가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처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전쟁으로 숱한 젊은이들을 희생시킨 그를 위대한 여성 지도자로 받들 일은 아니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젊은이의 죽음을 불사한 여성 리더십은 없다. 대처가 전쟁에서 어떤 남성 지도자보다 강한 리더십을 발휘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본을 받아야 한다는 보수 언론도 있다. 255명의 영국군 전사자 가족 모두에게 자필로 위로 편지를 보내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다는 데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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