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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패배자의 시선 / 이유주현

등록 2013-04-16 19:08

이유주현 국제부 기자
이유주현 국제부 기자
한국도 넉달, 미국도 넉달째였다.

미국 대선이 끝난 지 4개월이 지난 3월18일, 공화당 전국위원회(RNC)가 선거 결과를 ‘부검’하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네가 그들에게 관심 없다면 그들도 너한테 관심 없다.” 2008년, 2012년 대선에서 연패한 공화당은 이제까지 자기들이 무신경했던 사람들, 그리하여 자기들에게 표를 주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나선다. 히스패닉, 아시안, 흑인, 여성, 젊은층, 동성애 유권자들이 타깃이다. 해법은 구체적이고 방대하다. 전국적으로 유급 활동가들을 고용해 마이너리티와 소통하자, 젊은이들에게 영향력 있는 유명 스타로 구성된 ‘셀레브리티 태스크포스’를 만들자, <엠티브이> <피플> 등 젊은이들이 많이 보는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공화당 출신 주지사들로 하여금 히스패닉·흑인·여성들을 주 사법부·행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발탁하도록 하자, 쓸데없는 논쟁이나 맥락없는 망발로 입방아에 오르지 말자, 데이터 분석 연구소를 설치하고 디지털 전문가들을 대거 채용해 빅데이터 선거전을 치르자 등등. 보고서는 “공화당은 ‘텐트’를 넓혀야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며 “정부가 필요한 이들은 정부가 나서 도와야 한다”, “시이오(CEO)들의 거액 퇴직금 제도에 대해서도 반대하자”, “이민개혁법도 지지하자”고 과감한 주장을 펼친다. 이런 ‘처방전’이 모두 219가지다.

한국 대선이 끝난 지 4개월 가까이 된 지난 9일, 민주통합당도 대선평가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의 목적은 이러하다. “대선 패배의 원인을 엄격하게 규명하고 잘못된 결정이나 행동, 관행, 습속, 체질을 적시하며 책임의 소재를 밝힌다.” 당 안팎 인사로 구성된 평가위원회는 민주당이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연패한 데 대한 책임자를 찾아나선다. 책임을 가리는 방법은 당내 주요 인사와 유권자 대상 설문조사를 통한 계량화다. 응답자들이 계파갈등, 캠프의 조직적 결합 실패, 선거의 기본틀, 두뇌기능 미흡, 후보 문제, 정책 문제, 당내 협력 부진 중 가장 큰 패인을 계파갈등으로 꼽았으므로 계파갈등이 가장 문제라고 결론 내린다. 보고서는 특히 총선에서 패배한 친노 대표가 패인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황에서 차기 대표, 대선 후보가 친노로 뽑힌 것을 계파패권주의라고 비판하고, 대표 또는 대표 권한대행을 맡았던 한명숙, 문성근, 박지원, 이해찬과 문재인 전 후보의 책임 정도를 점수화했다. 설문에 응답한 당내 인사들의 편향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시험 점수 매기는 식의 발상이 유치하다. 이왕 점수화하겠다고 한다면, 애초 응시자 명단에서 탈락한 이들, 시험 안 보고 슬금슬금 빠진 이들에 대한 평가는 왜 빠졌는가? 총선을 함께 치른 다른 최고위원들, 중진들의 책임은 없는가? 총선 때는 자신의 금배지를 지키기 위해 지역구 박박 기며 호남 유권자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가 대선 때는 뒷짐지고, 다 끝나면 쇄신 운운하는 의원들은 계파갈등에서 자유로운가?

그랜드 올드 파티, 공화당(GOP)의 패배 분석 보고서의 이름은 ‘GOP’(Grwoth and Opportunity Project)다. 이들의 시선은 외부로 향하고 있다. 이들의 관심사는 성장과 기회라는 본래 보수의 가치를 내걸고 어떻게 텐트를 확장해 권력을 되찾아올까에 있다.

반면 한국 민주당의 시선은 철저히 내부로 쏠려 있다. 민주당이 부지런하지 못해 또는 생각이 모자라 무신경했던 사람들, 그래서 민주당에 표를 주지 않았던 사람들을 찾아나설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이 보고서엔 당 밖에 있는 유권자들, 자기 당 후보를 뽑고 나서 ‘멘붕’에 빠진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말해보자. “민주당이 우리한테 관심 없다면, 우리도 민주당에 관심 없다.”

이유주현 국제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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