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홍준표는 ‘아그똥한’ 사람이다. 당돌하고 반항적인 사람을 표현할 때 쓰는 전라도 방언이다. 그의 아버지는 울산 조선소 경비원이었다. 어머니는 고리채를 못 갚아 머리채를 잡힌 채 길거리를 끌려다녀야 했다. 돈 많고 잘나가는 부모 덕에 손쉽게 출세할 수 있었던 많은 새누리당 정치인들과 다른 태생이 그를 아그똥한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분노한 대중의 정서를 읽는 데 탁월했다. 당 안에서 포퓰리스트란 비판을 받으면서도 ‘반값아파트 법안’을 발의했다. 이중국적을 통한 병역기피를 막는 국적법, 병역면제 연령을 31살에서 36살로 높이는 병역법 개정을 주도한 것도 그였다. 당내 서민정책특위 위원장을 맡아 각종 서민입법을 주도하기도 했다.
‘진보적 보수주의자’, ‘서민의 친구’를 자처했던 그가 경남도지사가 된 뒤엔 서민을 위한 공공의료기관을 폐쇄하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정부도 반대하고 여론이 좋지 않은데도 밀어붙이고 있다. 서민 가슴에 못박고 약자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으면서 “서민을 위한 의료정책을 세울 때가 됐다”고 말하는 뻔뻔함이 놀랍다.
그는 원래 돌출적 인물이다. ‘돈키호테’란 별명은 그의 느닷없고 종잡을 수 없는 면모를 잘 드러낸다. 그의 돌출성은 ‘언론 노출증’과 연결돼 있다. 그는 검사 시절부터 언론을 효율적으로 이용했다. 자신을 드러내고 포장하는 데 능란했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중앙무대에서 잊혔던 그는 이번에 존재감을 한껏 과시하며 전국 이슈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그는 “폐업 결정 발표 때 이미 민주노총과 강성 야권의 전국적인 반발을 예상했다”고 말했다. 그가 이번 사태를 어떤 목표에 맞춰 의도적으로 도발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진주의료원 사태를 홍준표의 정치적 야심과 떼어놓고 생각하긴 어렵다.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발돋움하기 위해 진주의료원을 ‘제물’로 삼으려 한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몇 가지 단서가 있다. 그는 “진주의료원은 강성·귀족노조의 해방구”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공공의료는 좌파 정책”이라며 색깔 딱지도 붙였다. 진주의료원 문제를 이념대결로 몰아가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강성노조와 싸워 이긴 자랑스런 보수 전사’의 이미지를 만들면서 보수의 아이콘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김문수와 남경필이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비판하고 나서자 홍준표는 기다렸다는 듯이 역공을 펴며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김문수는 ‘얼치기’로 치부했고, 남경필에겐 “아군 등 뒤에서 칼을 꽂는 버릇을 못 버렸다”고 공격했다. 홍준표는 진주의료원 폐업을 통해 보수우파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 잠재적 대선 경쟁자인 김문수, 남경필과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고 계산한 것 같다.
진주의료원 사태가 그의 의도대로 흘러갈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무상급식에 무모하게 제동을 걸다가 정치생명을 잃은 오세훈이 떠오른다. 오세훈이 실패한 건 여론의 흐름을 놓친 탓이었다. 홍준표는 폐업 방침을 밝히며 “어떤 잡음과 비난이 있어도 기차는 간다”고 했다. 반대 목소리가 잡음으로만 들리는 그에게 균형감각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홍준표는 ‘변방의 정치인’임을 자랑하곤 했다. 2011년 당 대표에 당선되자 “이제 변방에서 중심으로 왔지만, 그러나 그 치열했던 (변방의) 정신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자서전이 <변방>이다. 그는 변방에 서고자 했을 때 빛났다. 서민의 편, 약자의 편에 섰을 때 그의 돌출성은 보수 일색의 새누리당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홍준표가 다시 변방의 정치인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sky@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종합] 보스턴 폭탄 테러 사건, 용의자 전원 체포로 종료
■ MB, ‘황제테니스’도 모자라 ‘반값테니스’?
■ 누리꾼, “국정원 은폐 폭로 권은희 지켜라”
■ “안철수가 인물은 인물인데 정치적 입장은…”
■ “오빤 침대 위의 마징가제트야”
■ 홍준표 지사, 휴일 관용차로 동창회 가다가 사고
■ [종합] 보스턴 폭탄 테러 사건, 용의자 전원 체포로 종료
■ MB, ‘황제테니스’도 모자라 ‘반값테니스’?
■ 누리꾼, “국정원 은폐 폭로 권은희 지켜라”
■ “안철수가 인물은 인물인데 정치적 입장은…”
■ “오빤 침대 위의 마징가제트야”
■ 홍준표 지사, 휴일 관용차로 동창회 가다가 사고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