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논설위원
정몽준 의원의 ‘근육질 발언’이 거침없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해야” “미국 전술핵 다시 들여와야” “자체 핵무장이라도 해야” 등등. 그 말들의 무모함이나 허구성을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정 의원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따져봐야겠다.
그는 7선의 최다선 의원이기 이전에 현대중공업(현중)의 ‘주인’이다. 회장직은 넘겨줬지만, 여전히 최대 주주(지분 10.15%)로서 중요 인사와 경영 방침을 결정한다. 현중은 1985년 일본 미쓰비시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선 이후 30년 가까이 조선업계에서 최대·최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 방위산업을 떠받치는 기둥이기도 하다.
국내 최초의 국산 전투함인 울산함 건조를 시작으로 1800t급 잠수함과 이지스함을 만들었다. 소말리아 해적을 퇴치한 4500t급 구축함 ‘최영함’도 직접 설계하고 건조했다. 물론 조선 부문에서 군함이나 잠수함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는 않다. 원유운반선, 컨테이너선, 정유제품운반선, 엘엔지(LNG)선 다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언제든 거대한 군수업체로 변신할 수 있는 게 중공업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현중은 최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카이) 인수 작전에도 뛰어들었다. 카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완제품 항공기를 제작하는 방위산업체다. 세계에서 12번째로 개발한 초음속기 T-50(일명 골든이글)이 대표 상품이다. 헬기, 미사일, 인공위성 발사체도 개발하고 있다. 현중이 카이를 합병하면 해군과 공군 분야에서 독보적인 군수업체가 되는 것이다. 현중은 이미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환이 가능한 나로호 발사에도 참여했다.
정 의원이 축구 외에 무기에도 관심을 두는 이유는 뭘까? 아마 중국이 치고 올라오면서 조선업 자체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승부욕도 작용했으리라 싶다. 그가 쓴 책 <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서른 살에 현중 사장이 됐다. 현중은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회사였다. 매출 규모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두 배가 넘었다.” 높았던 자긍심만큼이나 잃어버린 영광에 대한 아쉬움도 클 것이다. 빼앗긴 1위 자리를 되찾는 데는 군수산업만한 게 없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특히 요즘 한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면서 아파치 헬기 1조8000억원어치를 팔아먹고, 12조원 이상의 차세대전투기를 들이대는 미국 군수산업체의 판매전략이 그의 사업가적 상상력을 자극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라도 정몽준이 군수업자라는 사실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정치인이라는 옷으로 무기상의 몸을 가리고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각 가정의 집전화는 다 뜯어내고 갤럭시 에스로 교체하자”고 하거나,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철길을 다 들어내고 포장을 해서 현대차를 달리게 하자”고 말한다면 장삿속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군산복합체’를 얘기한 이후, 이 용어는 미국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여기에 정치권과 언론계, 학계를 더해 ‘군산정언학(軍産政言學) 복합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정 의원은 잘 알려진 대로 산(현중)이고 정(집권당 국회의원)이다. <문화일보>의 사실상 소유주이자 울산대 이사장이니, 언·학도 한 몸에 구현하고 있다. 꿈꾸는 대통령마저 된다면 군 통수권자로서, 군산정언학 복합체의 화룡점정을 찍게 된다.
그러니 정 의원은 발언할 때 장소를 잘 골라야 한다. 축구협회장 정몽준이 축구 얘기를 할 때는 신문로 축구회관을 이용했다. 전쟁이나 군수와 관련한 발언을 할 때는 전경련이나 경총 기자실을 이용하는 게 좋겠다. 여의도 당사나 국제회의장에서 마이크를 잡는 건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김의겸 논설위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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