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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더 깊게 흔들리는 분단체제와 포용정책 2.0 / 김종엽

등록 2013-04-30 19:10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개성공단에서 남쪽 직원들이 거의 모두 철수했다. 개성공단이 완전히 폐쇄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남북한 관계는 이제 국민의 정부 훨씬 이전으로 돌아간 듯이 보인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동요하던 분단체제의 재안정화 또는 분단체제 안정기로의 후퇴가 아니다. 오히려 개성공단 철수는 분단체제가 더 깊게 동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분단체제의 동요는 남북 사이의 적대적 상호의존성이 약화됨을 뜻하는데, 그것은 비적대적 상호의존과 상호의존 없는 적대라는 두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전자의 가능성, 그러니까 적대를 약화시키고 평화로운 상호의존 관계를 만들어가는 흐름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이후 남북한 교류협력의 강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기의 햇볕정책과 남북 정상회담에서 찾을 수 있다.

후자의 경향도 나타난다. 분단체제가 안정적이던 시기에 남과 북은 서로에 대한 위협을 자기 체제 안정의 자원으로 동원했고 그렇기 때문에 진짜 위기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지만, 분단체제가 흔들리면서 높은 수준의 적대가 지속되는 것도 가능해진다. 5·24조치와 연평도 포격 같은 이명박 정부 시기의 사건들 그리고 3차 북핵 실험 이후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이런 흐름이다. 한-미 ‘독수리 연습’이 실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B-52 전폭기에 이어 B-2 전략폭격기가 남한 상공을 비행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강력하게 반발하며 미사일에 연료를 주입했다.

이런 과정은 분단체제의 동요 속에서 평화와 긴장(또는 위기) 사이의 진폭이 커졌을 뿐 아니라 대북정책의 프레임 자체도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긴장 국면에서 이루어진 개성공단 철수 조처는 바로 그런 변동 상황을 예시한다. 이제는 햇볕정책에 내포된 이른바 기능주의 모델, 즉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회피하며 남북한 교류협력과 경제적 상호의존을 강화하는 것이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가장 유효한 길이라는 모델이 유효성을 잃게 된 것이다. 이 말은 그런 시도가 이전에도 가능성과 적합성을 갖지 않았다거나 이제는 추진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햇볕정책의 추진과 분단체제 극복 사이의 내적 연계가 이제는 보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낙청 명예교수는 햇볕정책을 포용정책 1.0이라 명명하면서 그것을 포용정책 2.0으로 발전시킬 것을 제안한 적이 있다. 그 핵심 내용은 남북 교류와 협상에서 시민 참여의 대폭적인 확장과 ‘낮은 단계의 국가연합’ 수립 같은 것이다. 이런 포용정책 2.0은 애초에는 포용정책 1.0의 성공 그리고 2012년 총·대선에서의 야권 승리를 전제로 제안된 것이었다. 하지만 포용정책 2.0은 역설적이게도 그것을 실현할 정치적 토대가 미비하고 포용정책 1.0의 가장 대표적인 성과인 개성공단마저 유실되고 있는 지금 더욱 절실한 것이 되고 있다. 분단체제의 동요가 더욱 심해지고 위기가 고조될수록 평화에 의한 비핵화를 정면에서 추구하는 정책이 요청되는데, 그것이 6자회담 또는 북-미 회담에만 일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과 낮은 단계의 국가연합이라는 제도적 보증을 향한 실천 사이의 선순환적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평화를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했다. 거기엔 확실히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통찰이 들어 있다. 아파치 헬기를 ‘사서’ 평화를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면, 필요한 것은 대화와 포용 그리고 화해를 향한 대담한 정치적 결단이다. 그리고 현 정부에 의해서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아니 그것이 가능할 때조차도 시민 참여의 길을 더욱 열심히 모색할 때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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