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 사회2부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잘살아보세’의 원조인 아버지를 의식한 듯 당선 뒤 “다시 한번 ‘잘살아보세’의 신화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철 지난 새마을운동이나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유신독재를 폈던 박정희 정권을 들먹이지 않아도, 선거 때마다 악수를 청하러 오는 정치인들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약속과도 닮아 있다.
201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야당 후보로 나서 당선된 최문순 강원지사도 잘사는 강원도를 만들겠다며 ‘소득 2배, 행복 2배’를 취임 뒤 도정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게 해주는 게 강원도민이 행복할 수 있는 충분조건일까’란 의구심을 내내 거둘 수 없었다.
시간은 후딱 지나갔다. 지난달 23일 취임 두 돌 기자회견에 나선 최 지사는 많은 일을 했다고 수줍게 자랑했다. “최문순 도정 두 돌, 동계올림픽 유치와 동해안 경제자유구역 지정 등이 가장 큰 성과”라는 굵은 고딕체의 보도자료 제목도 눈에 들어왔다. 최 지사는 보도자료 말미에 “오색로프웨이 설치 등의 현안 해결에 모든 힘을 쏟겠다”고 했다. 순간 가슴에 똬리 틀고 있었던 의구심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익숙하다. 초대형 국제 스포츠경기를 유치하고 대형 국책사업을 따오는 것이 ‘잘살아보세’ 모범 답안처럼 여겨지곤 한다는 것, ‘토건사업만이 지역경제 활성화’이니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도 깎아내 경기장을 짓고 도로를 깔아도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것, 다른 지역 경제자유구역이 망해가기 일보직전이라도 선거로 뽑힌 도지사로서는 ‘우리 지역에도 경제자유구역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일부 여론을 뿌리치기 어려우리라는 것. 설악산 국립공원에도 케이블카를 설치하라는 상인들 요구에 얼굴을 돌리기 어려우리라는 것 말이다.
그래도 이런 사안들을 최 지사가 2년 동안 이룬 ‘가장 큰 성과’라고 자랑하지 말기를 바란다. 개발지상주의의 속도감에 취해 강원도민들에게 ‘잘살아보세’라고 외치며 토건경제를 숭배하라고 설파했던 기존 정치와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최 지사가 최고 업적으로 자랑한 평창겨울올림픽 유치와 동해안 경제자유구역 지정이 강원도민들의 삶을 ‘잘사는 삶’으로 바꿀까? 겨울올림픽 유치 때문에 부채가 1조원에 이르러 하루 이자만 1억원인 빚더미 알펜시아리조트는 ‘카드 돌려막기식’으로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게 됐다. 올림픽이 끝나고 빚덩치를 더 키운 알펜시아가 어떤 식으로 강원도 재정에 충격을 줄지 상상조차 못하겠다. 더욱이 수천억원의 지방비를 경기장 건설 등에만 쏟아부어야 할 상황이다.
동해안 경제자유구역이 얼마나 기업을 유치할까란 기대를 채 품기도 전에 그 지역 주민들은 머리끈부터 묶어맸다. 최 지사는 국내 최대 규모의 비철금속 특화단지를 조성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환경오염을 우려하고 있다.
차라리 다른 성과를 내세우는 게 어떤가. 전국에서 처음 집 없는 가난한 노인들에게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무상 지원해주는 ‘따스안(安)’ 아파트 지원 사업, 대기업 사회공헌기금 등을 끌어와 펼친 전국 최초의 민간인 지뢰피해자 재수술 및 보장구 지원, 강원도립대의 ‘등록금 없는 대학’ 실현 노력 같은 것 말이다. 지역 토건자본의 입맛에는 맞지 않겠지만, 최 지사가 취임사에서 밝힌 인간의 존엄과 지역의 가치, 평화와 번영의 철학에 근접하려는 시도들이다.
잘사는 강원도로 바꾸겠다는 도민과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소득 증대 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과연 평창 겨울올림픽과 동해안 경제자유구역,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등이 강원도민에게 소득 2배를 가져다줄 정책인지 최 지사에게 묻고 싶다.
박수혁 사회2부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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