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주진우 구속영장청구서를 읽어보았다. 나의 손은 아직도 벌벌 떨리고 있다. 결국 이렇게 될 수 있구나. 죽으면 끝이구나.
<시사인>의 주진우와 김은지는 박근혜의 동생 박지만의 명예가 달린 중요한 재판에서 원래 박지만 쪽 인사가 박지만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려고 하다가 변사하였다는 의혹이 있다고 보도하였다. 박지만 쪽 심복이었으면서도 그에 대해 불만을 표하다가 갑자기 죽어버려 그 증인이 추가로 증언하였다면 박지만에게 불리할 수 있었던 재판이 결국 1, 2, 3심 모두 그에게 유리하게 끝나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주진우와 김은지는 죽음과 재판 둘 다에 대해 의혹을 제기해버린 셈이 되었다.
그런데 검찰은 그 재판에서 박지만측이 (물론 형사 사건이므로 형식적으로는 검찰이) 이겼으므로 박지만의 말만 참이고 그 재판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주진우가 예측한 반대증언(박지만이 범죄행위를 교사했다는 내용의 녹음이 있다는 증언)은 모두 거짓이라고 전제한다. 그리고는 주진우는 그런 증언을 보도하였으니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이 얼마나 무서운 논리인가. 시사인은 ‘법원판결이 증인의 죽음 때문에 잘못 나왔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는데 검찰은 그 기사의 진위를 바로 그 법원판결을 잣대로 결정하였다. 실제로 영장청구의 근거라는 것들이 바로 주진우가 증인이 살았다면 바로잡았을 수 있었다는 바로 그 법원판결이다.
결국 내가 엄청난 비밀을 법원에서 증언하려다가 살해당한 후 진실과 반하게 판결이 나버리면 아무도 내가 하려는 증언이 무엇이었는지 세상에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은 곧바로 나의 재판 상대방의 명예훼손죄를 뒤집어 쓰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죽은 자만 말이 없는게 아니라 산 자도 말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또는 죽은 자는 말이 없는게 아니라 그의 기억까지도 모두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검찰은 증인이 살아있었어도 법원판결이 달라질 것이 없었다고 믿는 것 같다. 주진우가 증언 내용 및 증언 의사에 대해 오독했다는 것이며 그 오독도 허위사실공표행위라고 주장한다. 우선 검찰 생각이 맞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죽은 증인이 박지만의 심복이었고 죽기 전에는 박지만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었음은 사실이며 그의 살해현장에 납득하기 어려운 정황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검찰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특히 살해현장보도에 대해서도 검찰은 스스로의 내사종결 사실을 반복할 뿐 허위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것만으로도 질문이 생긴다. 왜 죽었을까? 죽지 않고 증언했다면 법원판결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시사인이 하려고 한 것은 여기까지이다. 여기까지만 하면 안되는가? 의혹제기가 부족하여 다른 언론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건 의혹제기자의 몫이다. MBC의 광우병보도는 의혹 만 제기했을 뿐인데 검찰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위험이 높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치환하여 기소했던 것이 생각난다. 이 무죄가 나왔음을 상기하자.
게다가 검찰이 주진우가 파악한 증언내용이나 증언의사가 허위라는 주장도 억지스럽다. 당시에는 박지만에 대해 적대적인 발언을 일삼던 증인을 박지만 상대측 변호사도 법정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하고 또 박지만 상대측도 증인의 증언의사를 전해줘서 주진우가 “증언 예정”이라고 쓴 것을 “증인 채택”이 안되어 있다는 이유로 허위라고 주장하는 것도 “외환거래 자제 전화”를 “외환거래 금지 공문”이라고 썼다고 해서 허위라고 주장했던 미네르바 검찰이 생각난다. 미네르바도 무죄가 나왔음을 상기하자.
또 증인이 박의 교사행위를 입증하는 녹음의 존재를 다른 시점에서 증언한 것 자체는 사실인데 거기서 교사대상범죄는 주진우의 보도에서 염두에 둔 범죄와 달랐다는 것인데, 이 역시 진위에 관계없이 대세에 지장을 주지 않는 차이이다. A범죄에 대한 녹음이든 B범죄에 대한 지시녹음이든 당시 재판은 박지만의 A범죄, B범죄 모두에 대해 연루가능성을 다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어느 범죄에 대한 지시가 녹음되어 있든 무엇을 의미하든 증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의혹을 일으킬만한 발언이었다.
박정희 사자명예훼손 논리 역시 주진우가 하지 않은 말로 치환하여 주진우를 공격하고 있다. 주진우는 일부 언론이 박정희 탄광촌 방문을 독일총리 배석까지 가공하여 너무 미화하기에 ‘탄광촌에서는 만나지 않았다’라고 여러 차례 시정하다 한번 구두로 ‘탄광촌에서’라는 말을 빼먹은 것을 검찰이 과장하고 있다.
결국 이런 논리로 차마 공소장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소문처럼 선거법 공소시효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구속영장을 급히 청구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이유라면 그전에 불구속기소를 하면 된다. 수사를 해야 기소를 한다고? 구속으로 압박해서 자백을 얻어내 왔던 관행을 모르는 바 아니나 명예훼손성 재판에서 자백이 왜 필요한가. 원칙대로라면 구속은 수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구속은 증거보전과 피고에 대한 재판권 확보를 위한 것임은 영장발부요건을 보면 알 수 있다. 게다가 구속해봐야 묵비권행사해버리면 아무 의미도 없다.
게다가 허위사실공표죄는 선거법상 명예훼손이라고 볼 수 있는데 명예훼손 형사처벌제도는 국제인권기구들이 인권침해적 제도로 규정하여 반복하여 폐지권고를 내리고 있다. 물론 선거의 공정성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가치 때문에 상당수 인권선진국들도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를 존속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벌금형 정도로 다루고 있다. 이번처럼 이렇게 일종의 장기구금을 그것도 재판전에 하려는 것은 틀림없이 국제인권기준에 벗어나는 일이다. 또 이들 국가들은 매우 엄격한 입증책임을 검찰 측에 지운다. 즉 피고가 한 말이 허위일 뿐만 아니라 피고가 허위임을 알고 있었다는 고의성까지 검찰이 입증해야 비로소 유죄가 되는 것이다. 진실이 입증되지 않은 잠정적인 주장들이 자유롭게 다툴 수 있어야 궁극적인 진실규명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상의 자유시장 원리에 따른 것이다. 검찰은 물론 영장청구서에서 말한다. “법원판결이 났으므로 허위임을 알고 있었다.” 주진우는 증인의 죽음 때문에 그 법원 판결에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런 논리를 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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