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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단일화는 생각하지 마 / 임석규

등록 2013-05-19 19:17

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안철수, 문재인, 박원순은 단일화라는 특수 인연으로 묘하게 얽힌 관계다. 문재인은 안철수와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를 이뤘지만 대선에서 패했고, 박원순은 안철수의 전격적 양보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문재인과 박원순은 안철수에게 신세를 진 셈인데, 민주당이 노원병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고 안철수를 사실상 단일후보로 만들었으니 과거 빚을 일부 청산했다고 볼 수 있다. 바깥에서 세 사람 마음속의 채권·채무 관계를 어림하긴 어렵지만 언젠가 결정적 순간에 대중들은 세 사람의 특수 인연을 기억해낼지도 모른다.

역대 선거에서 야권은 통합과 단일화 경로에 크게 의존했다. 대선만 봐도 ‘디제이피’(1998), ‘노무현-정몽준’(2002), ‘문재인-안철수’(2012) 단일화가 있었고, 2007년엔 대통합민주신당을 급조했다. 야권이 통합과 단일화 경로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역사적·정치적 맥락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제 경로 변경을 검토해볼 때가 됐다. 여건과 상황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야권의 주축을 이뤄온 민주당의 체력이 매우 허약해졌다. 통합과 단일화는 중심축이 견고할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두 거목이 떠난 빈자리를 채울 리더십을 창출하는 데 실패했고, 총선과 대선에서 연패한 뒤에도 반전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야권에서도 민주당이 이미 대세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진보정당의 지리멸렬 또한 야권 지지층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을 촉발했다.

더구나 단일화·통합 같은 구호는 이제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선거 때마다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바람에 애초의 울림은 사라지고 공학적 뉘앙스만 남았다. 의미가 퇴화한 구호를 자꾸 앞세우면 국민이 피로감을 느낀다.

야권이 단일화 의존 경로에서 이탈해야 하는 좀더 중요한 이유는 혁신적 재편에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단일화와 통합은 ‘세력 간 이해관계의 절충’이란 속성 탓에 현존 질서를 허물지 못하며 과감한 재편을 어렵게 한다. 민심이 대동단결이 아니라 근본적 변화를 원하는 국면에서 단일화와 통합을 외치는 건 결과적으로 야권을 민심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다.

‘갤럽’의 15일 조사에서 정당지지율은 새누리당 29%, 안철수신당 26%, 민주당 12%였다. 지난 대선에서 정치 역량의 한계를 드러내며 실패한 안철수가 당을 만들기도 전에 민주당을 압도하는 건 기이할 정도다.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과 ‘다른 정치’에 대한 요구가 여전하며, 그것이 안철수 개인에 대한 선호를 넘어 근본적이고 과감한 변화에 대한 갈망에 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한번 형성된 기술이나 관습, 제도는 환경이 바뀌어 비효율성이 입증된 뒤에도 좀처럼 의존했던 경로를 벗어나기 어렵다. 이를 ‘경로의존성’이라 부른다. 대표적 사례가 타자기와 컴퓨터의 자판 배열이다. 영문 타자기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 자판은 ‘QWERTY’ 순서로 배열됐는데 이는 엉킴 방지를 위한 것이어서 글자를 빠르게 치는 데는 비효율적이었다. 이 배열은 엉킬 염려가 전혀 없는 현재 컴퓨터 자판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 경로에 집착하면 비효율을 감수해야 한다.

어차피 야권의 재편은 피할 수가 없다. 오는 10월 재보선에 이어 내년 6월 지방선거, 7월, 10월 재보선 등 연이은 선거는 야권 새 질서 창출의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민심의 저울추는 현존 질서와 체제를 밑동부터 갈아엎을 새로운 전망과 비전, 의지를 보여주는 쪽으로 기울 것이다. 야권에 지금 정말로 필요한 것은 어색한 통합이 아니라 냉혹한 승부다.

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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