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도무지 알 수 없는 세 가지’란 우스개가 돌아다닌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마음, 안철수 의원의 새 정치,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시간이 가면서 김정은 제1비서의 마음과 안철수 의원의 새 정치는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김정은 제1비서의 마음은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중국 방문 이후 큰 가닥이 잡히고 있고, 안철수 의원의 새 정치도 ‘정책네트워크 내일’ 창립 등을 거치면서 구체화될 조짐이다.
이와 달리 창조경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상상력과 창의성, 과학기술에 기반한 경제 운영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정책”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각 부처에서는 창조경제 관련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정책을 집행할 일선 공무원들은 “아직도 창조경제란 용어가 생소하다”고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답답해진 일부 공무원들은 서울시에 도움을 청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가 힘써 추진하고 있는 협동조합, 공유경제, 사회적 경제 같은 사회혁신, 도시혁신이 창조경제와 비슷한 대목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요즘 창조경제 개념을 파악하느라 고생하는 중앙부처 공무원과 같은 경험을 서울시 공무원은 2011년 11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직후 겪은 바 있다. 당시 박 시장의 역점 사업 가운데 하나가 ‘마을 만들기’였다. 담당 공무원은 서울시 424개 행정동마다 마을만들기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이를 위해 424개 마을만들기센터 사무실 임대비용과 센터에서 일할 사람들 인건비를 뽑았다. 이 금액을 바탕으로 마을 만들기 사업 추진계획과 예산안을 짰다. 하지만 이 보고를 받은 박 시장은 “이게 아닌데…”라며 퇴짜를 놓았다. 박 시장이 구상한 마을 만들기는 관 주도의 보여주기 사업이 아니라, 주민 주도의 공동체 형성이기 때문이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사회혁신은 시민사회와 정부·자치단체, 기업이 함께 사회적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 방법을 찾는 새로운 접근방식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유럽·미국 등에서는 주택 문제, 기후변화, 양극화 등에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해법의 실마리를 사회혁신에서 찾으려고 한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서울시의 다양한 사회혁신 사례를 들여다보고 창조경제에 적용할 시사점 등 도움을 얻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참에 박 대통령과 박 시장이 만나 창조경제와 사회혁신을 놓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박 시장은 박 대통령이 불러만 주면 “민생 분야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정책 제안을 하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과 박 시장이 만나면 말이 잘 통할 수도 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꽤 있다. 별명이 ‘꼼꼼원순’인 박 시장은 “내 브랜드는 꼼꼼하고 균형있는 행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박 대통령도 취임 이후 각 부처 주요 업무는 물론이고 세부 현안까지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꼼꼼국정’을 강조하고 있다. 별명이 ‘수첩공주’인 박 대통령처럼 박 시장도 현장을 찾거나 사람을 만날 때면 수첩을 챙겨 보고 들은 내용을 메모한다.
물론 박 대통령 측근 참모들은 대통령이 야권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박 시장을 만나 정치적 위상을 올려줄 필요가 없다고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무상보육 재원 마련 논란에서 볼 수 있듯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박 대통령은 박 시장뿐만 아니라 다른 시도지사 등도 자주 만날 필요가 있다. 지역과의 소통체계 구축을 위해 대통령-시도지사 정례회의 제도화도 검토해 볼 만하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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