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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각출-갹출

등록 2013-06-16 19:38

아나운서 사무실에는 다양한 문의 전화가 온다. 그 가운데 표준어와 표준발음, 맞춤법 관련한 내용이 빠질 리 없다. 아나운서는 우리말의 이모저모를 꿰뚫고 있다고 믿는 시청자들 덕분에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으니 고마운 일이다. 이런 질문은 저녁 이후 시간에 많다. 그 까닭은 ‘내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느 것이 맞다 답하면 전화기 너머로 환호와 탄식이 엇갈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미루어 그렇다. 아나운서는 ‘밥값(술값) 내기’의 심판자가 되기도 하는 셈이다.

아나운서들에게 걸려오는 전화에는 바람직한 언어 사용을 위한 제안이나 방송언어 오남용을 걱정하는 쓴소리를 담은 내용도 있다. 며칠 전 “방송에서 ‘더치페이’(Dutch pay)는 용인하면서 ‘분빠이’(分配)를 거부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전화를 동료 아나운서가 받았다. ‘더치페이’는 ‘각자내기’로 이미 다듬은 말(국립국어원, 2011년)이니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영어에서 왔건 일본어에서 왔건 둘 다 ‘각출’의 뜻”이라며 이어간 시청자의 볼멘소리 때문에 문제의 초점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몇몇에게 물으니 30대 이상은 ‘각출’을, 20대는 ‘갹출’을 처음 듣는다 했다. 각출(各出)은 ‘1.각각 나옴 2.각각 내놓음’, 갹출(醵出)은 ‘같은 목적을 위해 여럿이 돈을 나누어 냄’이다. 어느 학원 강사가 “‘각출’은 같은 비용, ‘갹출’은 각자 능력껏 다른 금액을 부담하는 것”이라 가르친다는 소리를 들었다. “밥값 5만원을 다섯 명이 1만원씩 내면 ‘각출’, 누구는 3만원을 내고 어떤 이는 5천원을 내서 5만원을 만드는 것은 ‘갹출’이니 ‘더치페이’에 딱 들어맞는 것은 ‘각출’”이라 밝힌 칼럼(ㅈ일보)도 있다. 근거 없는 주장이다. 2000년 이전 신문에는 추렴의 뜻인 ‘갹출’과 주식(경제) 용어인 ‘각출’(殼出)을 구분해 썼지만 최근에 국립국어원은 두 낱말을 한뜻으로 제시한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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