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강희제는 앞선 왕조인 명의 실록 편찬에 매우 열정적이었다. 그는 <명실록> 편찬 관련 보고를 받을 때마다, 명을 무조건 깎아내리지 말고 공정하게 서술하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강희는 우선, 자기도 실천하기 어려운 잣대를 들이대어 과거를 비판하는 것을 경계했다.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기는 쉽지만, 막상 자기가 하려면 어렵다. 자기는 돌아보지 않고 멋대로 옛사람에 대해 비평만 한다면, 아무리 문장이 좋다 한들 어찌 도리에 맞겠는가.”(<성조실록> 130권, 강희 26년) 그는 망한 나라를 멋대로 폄하해서 자기 정당화의 명분을 구했던 지난 왕조를 되풀이하지 않고 공정한 평가를 내릴 것을 강조했다. “원나라 사람들은 송나라를 비판했고, 명나라 사람들은 다시 원나라를 비판했지만, 짐은 망한 나라라고 해서 결코 그런 식으로 쉽게 비판하고 싶지 않다. 오로지 공정하게 평가한 논리를 따를 것이다.”(元人譏宋 明復譏元 朕幷不似前人輒譏亡国也 惟從公論耳 <성조실록> 179권, 강희 36년)
그가 이렇게 공정한 역사 기록을 요구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명나라의 좋은 제도와 정책은 보고 배우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명에 대해 잘못된 평가를 내리면 자신이 나중에 되레 비판을 받을 것이라는 역사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명나라가 이백년 이상 지속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좋은 풍습과 훌륭한 정책도 있었다. 이걸 다 비판만 해서는 안 된다. (…) 만약 명에 대한 부당한 평가가 하나라도 있다면, 후세인은 짐을 탓할 것이다.”(<성조실록> 218권, 강희 43년) 앞선 한족 왕조의 장점을 기록한 글이 돌아다니는 건 이민족인 만주족 왕조에 큰 부담일 수 있었지만, 강희는 역사에서 배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여기에 강희의 위대함이 있다.
반대파 정권에 대한 무조건적 배척은 오늘날도 다를 게 없다. 클린턴의 후임자인 부시는 “클린턴 정책과 다른 것은 뭐든!”(Anything but Clinton)을 외쳤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의 엔엘엘(NLL) 관련 대화록을 두고 몰상식한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반대파 정권의 장단점을 공정히 평가하고 배우려는 위대한 정신을 지닌 지도자를 가질 수 있을까.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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