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선 연세대학교 교수·의료복지연구소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건의료회의와 연금회의에 여러 번 참석한 경험이 있다. 미국 대표는 보건의료회의에서는 유럽 국가들을 부러워하지만, 연금회의에서는 자신만만하게 자기 나라 제도를 얘기하고 훈수한다. 공공의 과소 개입이 미국 의료제도를 엉망으로 만들었고, 국가의 과잉 개입으로 유럽 국가들은 연금부채의 질곡에 시달리고 있다.
의료서비스는 제공자와 환자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크다. 그래서 제3자 내지 공공의 개입이 정당화된다. 그 제도화에 실패해서 국민이 고통을 받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지디피(GDP)의 18%를 의료비로 쓰고도 국민의 4분의 1이 불완전한 의료보장에 고생하고 있다.
우리는 어떨까? 필자의 판단으로, 우리 의료제도는 오이시디 평균 이상의 성과를 보이고 있는 반면, 불안요인도 내포하고 있다. 지디피의 7% 수준의 낮은 의료비로 높은 의료 접근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성과다. 불안요인은 이러한 성과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의료비는 연간 두자릿수 증가율을 계속해왔고, 깊어지는 의료의 상업화로 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질은 위협받고 있다.
의료비의 증가가 양질의 의료서비스로 이어진다면 추가 부담을 하려 할 국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의료비 증가는 질 좋은 의료의 증가 때문이라기보다는 필수성이 떨어지는 ‘비급여’ 의료에 치중한 데 따른 결과다. 의료비 부담은 늘고 효과는 줄었다는 얘기다. 환자나 의료제공자 어느 한쪽의 잘못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보편적 인구보장은 성공했지만 급여 항목의 확대는 미진했던 건강보험 제도가 문제인 것이다.
우리 건강보험은 6%도 안 되는 낮은 보험료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건강보험 급여 항목의 확대에는 한계가 있었다. 급여의 기준도 높게 설정됐다. 이는 의료기관에 건강보험이 커버하지 않는 비급여 항목에 치중할 여지와 명분을 주었다. 낮은 보험료가 오히려 의료비 규모를 키우고 국민의 부담을 높이는 역설이 작동한 것이다.
문제의 원인이 확인된 만큼 해결 방법 또한 명확하다.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줄이는 것이다. 기술의 안전성과 의학적 효과가 확인된 것은 전부 건강보험 급여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건강보험 제외는 환자 스스로 선택한 고급병실이나 미용성형 등에 국한한다. 급여화의 초기 단계에서는 본인부담률을 높게 설정해서 환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필요가 있다. 가격을 공공이 정하고 보험자의 심사가 개입되므로 의료제공자의 도덕적 해이도 줄게 된다.
이번에 정부가 ‘급여 항목의 최대화’와 ‘본인 부담의 차등화’라는 현명한 선택을 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그대로 된다면 많은 문제가 풀릴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계획일 뿐이다.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방대한 작업을 위한 조직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기존의 많은 비급여 항목을 선별하고, 선별 급여의 항목마다 적합한 급여 방식을 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둘째, 급여의 확대에 따른 재원 확보 방안을 구체화해야 한다. 보험재정의 추가적 소요는 보험료의 인상을 수반한다. 전면 급여화로 환자의 부담이 줄면 민영보험의 필요성도 준다. 건강보험료 인상의 재원이 될 수 있다. 거시적으로는 오히려 국민의 부담이 줄 것이다. 셋째, 이번 조처는 4대 중증질환 이외 질환으로의 확대를 전제로 해야 한다. 같은 엠아르아이(MRI)를 찍는데 심장질환은 건강보험에서 해주고 간질환은 안 해주면 공평하다고 할 수 없다. 4대 중증질환이 전 질환 확대의 시범사업이 되어, 보장성 강화의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정형선 연세대학교 교수·의료복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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