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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여성의 삶 / 이유진

등록 2013-06-30 19:19

이유진 문화부 기자
이유진 문화부 기자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2013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집계 뒤 처음으로 여성이 총인구의 절반이 됐기 때문이다. 이미 서너 가구 중 한 가구가 여성 가구주이며, 2035년엔 절반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남성 후퇴 여성 약진’이라고 야단법석이다. 여성 대통령 탄생 뒤 이런 얘기가 부쩍 늘었다.

하지만 톺아보면 기뻐할 일도 아니다. 2013년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최근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를 보면, 6년 전 여성 비정규직은 남성보다 15만명 많았지만 지금은 59만명으로 격차가 벌어졌다. 남성 정규직 월급이 100%일 때 여성 비정규직 월급은 35.4%에 머물렀다. 한 취업포털 조사 결과 지난해 매출 상위 100대 기업의 남성 직원은 여성보다 1인당 평균 연봉 3000만원을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임원급이 많고 여성은 비정규직 보조 업무가 많기 때문이라고 기업들은 해명했다. 중요한 일은 남성이 하고 여성은 조금 거들 뿐이니 당연하다는 투다.

집에서 하는 일은 어떨까. 맞벌이 남편의 평일 가사노동 시간은 평균 17분, 아내는 2시간23분이다.(통계청, 한국사회동향 2012) 남성은 근무시간이 줄면 삶의 질이 나아졌는데 여성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유연근무제와 가족생활의 변화’(2011) 보고서를 보면, 유연근무제 뒤 여성은 75.8%가 아이 키우는 데 남은 시간을 썼지만, 남성은 그런 경우가 46.5%였다. 여성의 줄어든 유급노동시간은 가사노동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휴식이 없고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논의가 터져나온다. 뭐가 반듯하다는 건지도 잘 모르겠는데 벌써부터 찬성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에게 재취업 자리를 주겠다지만 성별 직업 서열을 고착시킬 우려도 크다. 게다가 그다음 나올 것은 뻔하다. 1980년대 건전가요 가사처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는 평등한 나라를 만들어주었는데 왜 일하지 않느냐며 복지를 줄이려는 ‘개인책임 담론’이 급부상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도 그랬다.

여성 고위직이 늘면서 여성의 삶이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자본이 일부 노동자 계급을 포섭하면서 나머지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분할통치를 해온 것처럼, 가부장제 또한 여성을 분할통치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여성은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 ‘토큰적 지위’를 얻어 ‘승진버스’에 탑승하지만, 상당수 여성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한다. 일상에서도 어떤 여성은 자기가 해야 할 가사노동을 남에게 떠넘긴다고 비난받고, 또다른 여성은 쥐꼬리만한 월급을 버느라 제 아이 건사도 못 한다고 무시당한다. 아이를 안 낳으면 여성 국민의 의무를 안 한다며 ‘엄마 가산점제’ 논의에서 배제되고, 아이를 낳아 놓으면 돈 벌면서 누가 대신 키울지 해법도 찾고 ‘남의 손 양육’에 대해 뼛속 깊이 성찰하라고 윽박지른다.

여성노동 문제에서 여성은 많은 경우 동정의 시선으로 대상화하거나 ‘보슬아치’(여자 성기를 가진 벼슬아치)라며 혐오의 대상이 된다. 대상화되는 모든 이가 행복하지 않다. 대안이 있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런 이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대안주의란 ‘지배자만이 순조롭다고 하는’ 범위를 거스르지 않는 ‘대안’을 낼 것인지, 그게 아니면 침묵할 것인지를 강요하는 공갈과 같다.”(사카이 다카시, <통치성과 ‘자유’>) 문제의식을 아예 봉쇄하고 배제하려는 지배자들이 곳곳에 있다.

이유진 문화부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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