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월간 비범죄화(月刊 非犯罪化)

등록 2013-07-05 20:15수정 2013-07-05 22:19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월간 비범죄화>, 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진
연합 발행, 2013
며칠 전 만난 출판 관계자와의 대화. “선생님(나)은 소설 안 좋아하시죠?” “아뇨, 저 은근 장르 문학 팬인데요.” “보통 사회과학 하는 분(나?)들은 픽션보다 논픽션을 주로 읽지 않나요?” “아니,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종종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지라 본의 아니게 방어적이 되었다. “저는 픽션, 논픽션 구별하지 않거든요. 다 담론이지. 좋은 소설은 좋은 논문이고 좋은 기사는 좋은 정치학이죠.”

전통적으로는 글의 형식(그릇의 형태)이 내용을 강제한다고 본다. 형식이 곧 내용이다. 논쟁적인 문제지만, 이와 다른 차원에서 읽을거리로서 가치 있는 글은 어떤 글일까. 나는 모든 글은 질적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예술과 외설, 논문과 잡글, 사실과 허구, 본격소설과 통속소설(심지어 참여문학과 순수문학!), 문학과 사회과학…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짧은 인터넷 댓글과 <토지>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글을 읽고 즐거움, 의문, 성찰을 경험했다면 글의 소속(?)은 중요하지 않다. 논문은 칼럼보다 우월하고 논픽션은 픽션보다 사실인가? 혹은 그 반대인가? 문제는 글의 내용과 정신이다.

지식인은 다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노동자고, 글은 소비재다. 읽는 사람은 독자가 아니라 사용자다. 지식이라는 아우라 때문에 다른 상품에 비해 불량품이 많지만 판별이 어렵다는 게 다를 뿐이다. 내용은 없고 기성성(旣成性)만 생산하는 군림하는 글들. 이런 글들 때문에 자기 검열에 시달리다가 글쓰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많고, 예술가로서 극심한 좌절에 이르면 글과 인생을 맞바꾸는 이도 있다.

찌라시는 형식의 말석(末席). 아니, 지위 자체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일본어인 찌라시는 흩뿌리다(散らす)의 명사형. 책의 기본인 권(卷), 묶인 것도 아니고 ‘뿌리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내가 읽은 글 중 가장 재미있고, 유익하고, 공동선을 위한 글은 찌라시였다.

전자우편으로 받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내용을 전재한다. 이 찌라시의 맞춤법 오류, 비속어는 고의적 형식이므로 원문 그대로 옮긴다. 지적이고 유쾌하다. 매달 발행되며 아래는 창간호다. 참여 단체명을 자세히 읽기 바란다.

성판매 여성을 비범죄화하라!

우리 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진연합은 오늘, 성판매 여성에 대해 전면적으로 비범죄화할 것을 엄숙하고 거룩하게 선포하는 바이다. 다만 선언하고 선포할 뿐,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선언은 그런 거니까.

1. 우리는 자본주의, 가부장제, 젠더권력의 문제인 성매매를 성판매 여성 개인의 문제로만 취급하는 것에 반대한다. 2. 성판매자를 범죄자와 피해자로 나눌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자들을 규탄한다. 3. 가능하지도 않을 강제냐 자발이냐 기준 세우기는 그만하고, 성판매 여성의 노동조건에 대한 문제제기와 사회적 지원에 대한 논의에 힘써야 할 것이다. 4. 성판매자를 성적으로 타락한 자, 더럽혀진 자, 비난받아 마땅한 자로 낙인찍어 차별하는 자들을 낙인찍을란다. 5. 치사하게 구매하는 입장이면서 판매하는 사람 비난하기 없긔.

더 이상 이 땅의 모든 성판매 여성들이 성판매를 한다는 이유로 맞거나, 죽거나, 차별받거나 범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첫걸음으로 성판매자에 대해 전면적인 비범죄화를 주장하는 바이다.

2013년 4월 어느 봄날에. 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진연합(이하 소속단체)

곰팡이와싸우는세입자연대, 남성연대반대하는남성모임, 도우미안쓰는노래방협회, 딸자식이뭘하고돌아다녀도지지할학부모회, 목소리작고아름다운꼴페미연대, 목소리크고못생긴꼴페미연대, 명절날엄마의파업을꿈꾸는일안돕는딸년모임,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反야근칼퇴근직장문화확립추진위원회, 서로비난안하는부모자식연합, 성구매할생각없는한줌의남성모임, 성욕의총량을측정계량중인연구자(개인), 시급만오천원시대를꿈꾸는알바인연합, 애국국민이기싫은국민연합, 여가부하는일별로맘에안드는여성주의자모임, 한국에와서여성우월주의로변질된페미니즘연구회(우리 졸라 많지?). 월간 비범죄화 정기구독 메일링 신청 http://goo.gl/KkFik

탁월한 성매매 담론이다. 내 소속은 남성 모임 빼고 다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한겨레 인기기사>

주식 투자 이대로만 하세요, ‘쪽박’은 안 찹니다
김무성 의원님 문자메시지 사진 어떻게 찍었냐고요?
‘페이스북 독설’ 기성용, 최강희 감독에게 사과
이집트 무르시 몰락에 중동 왕정국가들이 웃는 이유
[화보] 춤추어라, 굴업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