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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WTO시대의 적합업종제도 / 임채운

등록 2013-07-17 19:31

임채운 중소기업학회장·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임채운 중소기업학회장·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확대되면서 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적합업종을 법제화하기 위한 의원발의도 이루어지고 있어 적합업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적합업종제도는 고유업종 지정제도(중소기업사업조정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79년 시작된 고유업종 지정제도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방지하고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고유업종 지정제도는 본래 취지를 살려 중소기업의 생존 기반을 다지는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과도한 보호에 안주하려는 부작용 △경쟁 제한에 따른 소비자 후생 저하 △외국 기업의 진입을 제한하지 못하는 역차별 등의 문제점이 나타나 2006년 폐지됐다.

그런데 27년 동안 운용된 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된 이후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사업 분야로 대거 진출하면서 경제력 집중 현상이 심화됐다. 대기업의 진출에 따라 일부 제품의 가격 인하, 품질 향상에 따른 소비자 후생 증가 등의 효과도 나타났다. 그러나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수직계열화하고 도소매업, 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MRO), 생계형 서비스업 등에 무분별하게 진출하여 중소기업의 사업성이 악화되고 경제 생태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출범한 동반성장위원회에서는 중소기업이 사업을 영위하기 적절한 분야에 대해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적합업종을 선정한 바 있다. 정부가 입법을 통해 운용한 것이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제도라면, 적합업종은 민간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가 양자 간 협의를 통해 지정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적합업종 지정은 정부가 법제화한 고유업종 지정제도와 달리 대-중소기업 간 협의에 의해 중소기업의 안정적 경제활동 기회 보장과 지속 경영을 통한 일자리 창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여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장점이 있다. 이에 따라 제조업은 2012년 1월까지 85개 품목을 양측의 합의에 의해 적합업종으로 지정했고, 서비스업은 생계형 업종을 대상으로 금년 2월 15개 업종을 발표했다.

여기서 적합업종 지정과 확대는 동반성장을 위해 불가피한 조처임을 확실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적합업종 지정은 현재의 경제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선택이다. 그러나 실효성 강화를 이유로 정부가 나서거나 적합업종을 법제화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나 개별 국가와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통상 마찰의 우려가 생긴다.

예를 들어 세계무역기구의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S) 규범 16조2항은 정부가 서비스 분야의 공급자 수를 제한하는 것은 불법으로 규정한다. 얼마 전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을 강화하려고 할 때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유통업체들이 국제법을 들먹이며 저항한 사례도 있다. 적합업종제도가 법제화되면 국제 분쟁의 발생 소지가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정부가 법과 제도로 규제하기보다는 “민간의 합의”를 유도해 자율적으로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협의를 통한 동반성장을 추구하면 승자 독식을 피할 수 있고 패자 없는 게임이 가능하다. 경제 양극화라는 장애물을 넘어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경제 주체가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를 통해 공감과 양보를 실현하고 창조와 혁신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존재하는 동반성장위원회에서는 통상 마찰을 피하면서도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중소기업이 함께 노력하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 가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정부와 이해 당사자들이 법으로 풀기 어려운 경제 현안에 대해 협의를 통해 해결하는 동반성장 문화를 확산해야 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임채운 중소기업학회장·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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