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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그들의 결혼 / 이유진

등록 2013-07-28 18:37

이유진 문화부 기자
이유진 문화부 기자
언론 보도를 보면, 얼마 전 아기를 낳은 영국 윌리엄 왕자 부부의 출산비용은 1700만원이라고 한다. 두 사람의 결혼비용은 최대 1700억원까지 이른다는 얘기도 있었다. ‘로열 패밀리’, ‘로열 베이비’가 그들뿐만은 아니다. 시중은행 한 곳이 올해 초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부자 78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결혼비용은 남녀 모두 1인당 4억원대였다. 비슷한 부자들이 결혼하면 8억~9억원, 그야말로 억 소리가 난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 결혼하면 저절로 한몫 단단히 잡게 되는 셈이다.

일반인들의 결혼비용도 만만찮다. 보건복지부와 보건사회연구원의 ‘2012년 전국 결혼 및 출산 동향 조사’를 보면, 지난해 1인당 결혼비용은 평균 4468만5000원으로 양가에서 1억원 가까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뚜렷해서, 가구소득이 100만원 미만일 때 1840만원, 가구소득 500만원 이상일 경우 6166만원이었다. 돈이 없어 결혼을 못한다는 미혼 남성이 87%, 시집 중심의 생활이 부담스러워 결혼을 미루는 여성도 72%에 이르렀다. 종합하면, 결혼비용은 결혼과 출산에 두루 악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주거지원 정책이 강화되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혼 뒤 부모의 영향력도 심각한 걸림돌이다.

신혼집 장만은 특히 부담이 크다.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은 전체 주택의 5%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로, 회원국 평균 11.5%의 절반도 안 된다. 네덜란드의 공공임대주택은 30%대, 오스트리아·덴마크·스웨덴 모두 17~23% 사이를 오르내린다. 임대주택이 턱없이 부족하자 박근혜 정부는 신혼부부들이 살 ‘행복주택’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예정지 주민들의 반발이 만만찮고,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처럼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쏟아진다. 신혼부부들은 눈치만 봐야 하는 실정이다. 가장 안전한 길은 양가 부모가 집을 마련해주는 것인데, 억대를 투자한 만큼 부모들의 영향력은 불 보듯 뻔하다. ‘결혼은 한 침대에 부부가 양쪽 부모와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이라는 말이 농담만은 아닌 것이다.

이런 결혼은 어떤가. 며칠 전 한 지인은 모임에 나와 난데없이 자기가 결혼했다고 ‘선언’했다. 섭섭해(고마워)하는 친구들에게 해준 이야기는 이렇다. 두 사람은 결혼식 대신 성당에서 작은 서약을 했다. 신부는 웨딩드레스 대신 감색 원피스를 입었고, 양쪽 가족 5명씩만 참석했다. 집은 작은 자취방을 그대로 이용하되 전세금은 똑같이 부담했다. “거액을 들이고 부조 받는 결혼을 피하고 싶었다”고 지인은 말했다. 부모도 뜻밖에 주변의 비판보다 지지를 많이 받아 만족했단다. 무엇보다 비판적 학문을 공부한 부부가 ‘입 진보’에 그치지 않고 실천했다는 점이 신선했다. 양가의 소양을 바탕으로 지루한 설득과 협상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비비아나 젤라이저는 ‘친밀성’이 경제적으로 거래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돌봄과 관계는 돈으로 사고 협상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결혼은 경제적 거래가 특히 뚜렷한 영역이다. 부모에게 거액을 받았으니 독립은 어렵고, 부모는 돈을 쥐어짰으니 부조금이나마 받아야겠고, 그것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다. 관계의 문제가 마구 얽혀, 시작하는 부부의 삶을 복잡하고 위태롭게 하며 사랑과 결혼은 돈거래가 점철된 ‘지독한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현대사회에서 결혼은 이미 위험 회피와 배분의 경제학이 됐고,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유지하든 심지어 파기하든 그에 따르는 대가는 점점 더 혹독해지고 있다.

이유진 문화부 기자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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