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주현 국제부 기자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자본의 탐욕에 맞서 오큐파이(점령하라) 운동이 활활 타오르던 2년 전 가을이었다. 당시 미국에 머물렀던 나는, 궁금한 마음에 워싱턴디시 한복판에서 열린 오큐파이 시위 현장을 찾아갔더랬다. 처음엔 구경만 할 생각이었는데, 궁금한 건 참지 않고 묻는 직업을 10년 넘게 해온 터라, 시위대에게 말을 걸었다. 백발이 성성한 은퇴한 교사는 “전쟁 말고 학교에 돈을 써라”라는 팻말을 들었고, 혼자 애들을 키운다는 이혼녀는 은행에 집이 담보잡혀 쫓겨날 판이라 막막해서 나왔다고 했다. “우리가 히피냐? 애국자지”라는 손팻말을 든 한 시민은 “<폭스뉴스> 같은 보수 언론들은 우리를 ‘비애국자’, ‘히피’라고 부르며 폄하한다. 그들은 우리가 이뤄낼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현재 시점에서 보자면, <폭스뉴스>가 겁낼 건 없어 보인다. 제이피모건·골드만삭스 등 월가를 주무르는 6개 대표 금융기관은 올 2분기엔 전성기 시절의 순익을 회복했다. 시민들 세금으로 조성된 구제금융기금을 집중적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시민들 삶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정부가 그처럼 돈을 풀었는데도 미국 빈곤층(4인 가족 기준 2만3050달러)은 2011년 4900만명에서 2012년 4970만명으로 늘었고, 어린이 25%가 정부의 급식 보조를 받는다.
거리시위가 언제, 어떤 변화를 이뤄낼지는 예측하기 쉽잖다. 올해만 해도 불가리아, 터키, 브라질,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 등에서 거대한 반정부 시위가 잇따랐지만, 집권세력은 요지부동이거나(불가리아, 터키), 더욱 큰 혼란으로 악화됐거나(튀니지, 리비아), 군부 개입을 불러왔다(이집트). 한국만 해도 2008년 수십만개 촛불이 반엠비(MB) 전선에 나서 대통령의 사과를 이끌어냈으나 이후 정권은 민간인 사찰 등 더욱 교활한 불법을 저질렀고, 이런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여당 후보가 당선됐다.
과연 오큐파이는 신기루였을까? 촛불은 다 녹아버린 걸까? 아니다. 지난달 말부터 미국에선 뉴욕·시카고 등 7개 대도시에서 시작한 패스트푸드 노동자 파업이 번져가고 있다. 미국 패스트푸드산업은 번창하고 있지만 대부분 노동자들은 연방정부 기준 최저임금인 시간당 7.25달러를 받는다. 20만개 넘는 매장엔 노조가 한 곳도 없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조직화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하며 이를 ‘오큐파이 학습효과’라고 짚었다. 오큐파이를 계기로 불평등에 대해 발언할 정치적 공간이 마련됐고, 이에 공감하는 시민들의 윤리적 감수성이 깨어났으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집결 방식을 배웠다는 것이다.
화제의 신간 <충청도의 힘>에 보면, 대선에서 1번(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을 찍었던 장인어른이 5번(김소연 진보신당 후보)을 찍곤 맥빠져 있는 사위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푸짐한 ‘충청어’로 위로의 말을 건넨다. “눈 오는 날을 그지(거지) 빨래하는 날이라고 부르잖여. 그런데 눈 오는 날은 그지 빨래하는 날도 되고 그지들 때미는 날두 되는겨. 벗구나서 알루다가(발가벗구) 가만히 있으믄 거 얼매나 서루 치다(쳐다)보기 곤욕이겄어. 벗은 김에 목간(목욕)두 허겄지 안 그려? 시상(세상)일이 한가지루다가 똑 떨어지는 벱(법)은 절대 웂는겨. 사램이 뭔 일을 허잖냐? 그라믄 그 일은 반다시(반드시) 새끼를 친대니께? 그라니께 빨래허믄서 어이구 언제 목간허냐 걱정헐 것두 읎구, 먹으면서 언제 싸냐 계산할 것두 읎다 이 말이야. 내 말은 그라니께 1번 되았다구 너무 야코죽지 말어 잉? 5번 찍었으믄 반다시 5번이 새끼 칠 날 올 거니께!”
이유주현 국제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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