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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태항산의 윤세주와 ‘백선엽상’ / 김상웅

등록 2013-08-05 19:05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주최 중국 화북지역 항일무장투쟁지 답사단 일행은 7월27일 태항산 기슭 윤세주 열사 초장지에서 소략한 제를 올렸다. 윤 열사의 고향인 밀양에서 가져온 맑은 술과 과수로 상을 차리고 10대에서 80대에 이르는 70명의 답사단은 엎드려 추모했다. 나는 제문을 읽다가 울컥 치미는 감정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윤 열사는 신흥무관학교를 거쳐 만주에서 김원봉 등과 의열단을 조직하고 국내로 잠입해, 의열투쟁으로 6년여를 서대문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했다. 출옥 뒤 중국으로 탈출하여 조선정치군사간부혁명학교, 민족혁명당에 이어 1938년 조선의용대를 창설하여 무장투쟁에 나섰다. 조선의용대는 호가장전투를 비롯하여 태항산에서 일본군과 맞서 수차례 전투를 벌였다.

윤 열사는 장자령전투에서 정예 일본군과 전투중에 적의 총탄을 맞고 1942년 6월2일 42살의 짧은 생애를 접었다. 태항산 기슭의 전투에서는 윤 열사와 진광화 열사를 비롯해 수명의 조선의용군과 중국 좌권 장군 등이 희생되었다. ‘최후의 분대장’으로 알려진 김학철 선생도 이때 총상을 입고 일본 나가사키형무소에 끌려가 다리를 절단했다.

베이징에서 자동차로 10시간을 달려야 하는 산악지대 태항산은 산제비도 날기 어려운 험준한 지역이다. 조선청년들은 이곳에서 항일군 소탕전을 벌이는 일본 관동군을 상대로 해 반소탕전에 나섰다가 희생되었다. 당시 관동군에는 백선엽·박정희 등 우리에게 낯익은 이름도 들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전선에서 일군과 싸운 청년들이 있었고, 일본군에 지원하여 독립군에 총질을 한 반역배도 많았다.

백선엽씨는 일본에서 출간된 <간도특설대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이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간도특설대는 관동군의 특설부대였다.

우연일까, 귀국 비행기 안에서 본 신문기사는 7월27일 ‘백선엽한미동맹상’ 첫 수상자로 예비역 미군 장성이 결정되고, 그의 손자가 서울에 와서 수상했다는 거였다. 우리 일행이 윤세주 열사의 묘소를 찾던 날 서울에서는 항일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백씨의 기념상 시상식이 거행된 것이다. 미국 군인들에게 미국 독립군에 총질을 했던 영국군 사령관 콘월리스를 기리는 상을 준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용군은 산 설고 낯선 중국의 오지에서 며칠씩 배를 곯으며 일본군과 싸웠다. 90을 넘긴 현지의 할머니는 아직도 조선청년들의 당당했던 기백을 기억하고, 마을의 민가에는 일본군으로 복무하는 조선청년들에게 의용군으로 돌아오라는 벽서가 퇴색한 채 남아 있다. 그나마 윤세주·진광화 열사의 무덤은 중국 정부가 잘 관리하고 있었지만 무명전사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산화했다. 윤 열사는 순국 71주년이 지났건만 유해가 이국땅에 묻혀 망향의 날을 기다리고, 그토록 그리던 조국은 친일파들의 세상이 되었다.

며칠 전 독일 베를린·함부르크·쾰른 등 주요 도시에 은신한 나치 전범자에 대한 신고를 촉구하는 포스터 2000여장이 내걸렸다. 포스터에는 “늦었지만 너무 늦지 않았다. 수백만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나치전범에 의해 희생당했다. 가해자 일부는 자유로운 상태이며, 생존해 있다. 그들을 체포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런가 하면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나치식 헌법 무력화를 배우자”는 취지의 망언을 했다. 우리가 친일청산·독재청산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내의 친일·독재 잔재가 주류가 되고, 일본에서는 군국주의 ‘귀태’(鬼胎)가 요동친다. 가장 치열하게 일제와 싸우고도 남쪽에서는 외면받고 북쪽에서는 숙청당한 조선의용대(군)의 전투 장소를 떠나면서 전 독일 대통령 폰 바이츠제커의 말이 떠올랐다. “밝은 미래는 분명한 기억을 필요로 한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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