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 뜻을 둔 학생 몇 명과 ‘8888 모임’을 했다. 달력을 보니 왠지 8이 유난히 눈에 들어와 만든 이른바 ‘빠빠빠빠 모임’이다. 8이 겹친 지난주 목요일 저녁 8시8분에 8의 기운을 제대로 받으려 장소도 중국집으로 잡았다. 발음이 ‘발’(發)의 ‘파’와 비슷해서 중국인들이 좋아한다는 숫자 ‘팔’(八). 학생들이 세운 목표가 꽃처럼 피어나기 바라는 선생의 마음을 담아 그렇게 했다면 지나친 말일까. 어쨌든 그래서인지 ‘8888 모임’에서는 웃음꽃, 이야기꽃이 만발했다. 이야기꽃의 한 송이는 ‘숫자놀이’로 피어났다.
‘2 4 5 열 십 만 두 세 네 석 넉’. ‘숫자놀이’의 시작을 알린 학생이 시처럼 읊은 내용이다. “차림표 2쪽 4번째, 5번째 메뉴는 한 접시에 ‘열’개씩 나오는 ‘만두’이니 각자 ‘세’ 개나 ‘네’ 개씩 먹으면 된다. ‘석’ 점, ‘넉’ 점씩 먹는 것도 같은 표현이다” 이런 말이 아니다. 조선의 역대 왕을 외기 위해 동요 ‘산토끼’ 가락 따위에 맞춰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으로 읊던 것과 같은 것이다. 길게 발음해야 하는 수를 외우려 같은 말을 되뇌는 학생들이 기특했지만 이에 낀 고춧가루처럼 마뜩잖은 정보가 하나 있었다. ‘열’[열:]이었다. ‘십’(十)의 토박이말인 ‘열’은 과연 장음인가?
사전은 ‘열’을 ‘아홉에 하나를 더한 수’로 풀이하고 발음 정보를 따로 붙이지 않았다. 장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해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엣센스국어사전> <동아새국어사전>이 그랬다. 전영우가 펴낸 <표준한국어발음사전>도 ‘열’을 단음으로 명시했다. 소리 길이는 물론 높낮이까지 표시하는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도 ‘열’은 단음으로 나온다. 사전 대부분이 ‘열’을 단음으로 표시하고 있으니 학생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끝? 아니다. 간단치 않은 ‘열’의 발음 얘기는 다음주에 이어진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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