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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세금폭탄론’에 대한 우려 / 양재진

등록 2013-08-12 19:35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정부의 2013년 세법 개정안에 대해, 민주당이 적극 저지를 선포하고 진보 성향의 언론도 ‘세금폭탄’이라며 반대 여론 형성에 앞장서고 있다. ‘유리지갑’ 샐러리맨들의 부담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러한 진보 진영의 입장이 이 땅에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은 민주당이 박근혜 정부를 곤경에 몰아넣는 데 성공해도 말이다.

이번 세법 개정안은 복지 증세의 끝이 아니라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복지국가 건설에 증세가 불가피하다면, 보수 정권에서 증세하겠다는데 못 이기는 척하고 밀어주는 게 상책이다. 박근혜표 복지 공약 이행에 매년 27조원이 필요한데, 세법 개정으로 확보되는 세수는 고작 2조5000억원밖에 안 된다며 비판의 날을 세우면서 말이다. 그런데 과거 보수 진영의 전가의 보도였던 세금폭탄론으로 진보가 복지 증세의 물꼬를 틀어막으면, 앞으로 어쩌자는 말인가? 그리고 이번 세법 개정안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어, 고소득자일수록 세 부담이 더 크게 늘어난다. 반면 저소득자들은 근로장려세제의 확대와 자녀장려세제 신설로 아무런 세 부담 없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소득 재분배 차원에서라도 진보 진영이 안 받을 이유가 없다.

비판 여론에 밀려 박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한다. 잘된 일인가? 민주당의 ‘봉봉세(봉급쟁이를 봉으로 보는 세제안)론’은 ‘어떤 형태로든 중산층 샐러리맨에 대한 세 부담은 한 푼도 올릴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 우려스럽다. 증세 없이 복지 확대가 불가능할진대, 커다란 성역을 만들어 놓았다. 민주당은 세금폭탄론 대신 샐러리맨들의 양보를, 자영자, 부자, 대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증세의 명분으로 활용할 수는 없는가?

사실 세 부담만 따지자면, 우리는 ‘천국’에서 살고 있다. 2010년 정부가 소득세로 거둔 돈은 국내총생산(GDP)의 3.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12.8%에 달하는 스웨덴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만 해도 8.0%를 차지한다. 월급이 350만원인 평균 소득의 샐러리맨 입장에서 보자. 3인 가족 가장인 경우, 실제로 내는 소득세는 연봉 4200만원의 2.7%인 113만원이다. 독신이면 공제 혜택이 줄어 180만원을 낸다. 미국이라면 모든 공제를 받아도 722만원, 독일이면 798만원, 덴마크면 1176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전체 근로소득자의 40%는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낸다. 대신 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액의 77%를 담당한다. 어떤 오이시디 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서민과 중산층에게 매우 유리한 조세 구조다. 대신 ‘공동구매’의 효율성을 저버린 채, 각자가 저축과 민간 보험을 통해 복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세법 개정안이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것인가? 그렇지 않다. 중산층 근로자가 월 1만~2만원을 추가 부담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공동구매를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복지 수요를 충족하는 새로운 복지 시대의 문을 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재벌과 부자들의 세 부담을 더 높여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부자만 내라’는 식으로 얼마나 증세에 성공할까? 그리고 증세 없이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을까? 일본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을 위한다며 증세 없이 복지만 늘려 정부 부채를 국내총생산의 240%에 달하게 만들었다. 일본 재무성에 의하면, 2000년 이후 급증한 부채의 80~90%는 복지 지출 때문이다. 스웨덴의 정부 부채가 국내총생산의 40% 내외에 불과한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세법 개정안을 복지국가를 향한 재정 확충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스웨덴같이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가 아니라 침몰하는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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