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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머리털 뽑는 박근혜 정부 / 권혁철

등록 2013-08-13 18:35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나는 대머리다. 없는 머리털을 가리기 위해 이 칼럼의 필자 사진도 헌팅캡(일명 도리구치)을 쓰고 찍었다. 나는 20대 중반까진 머리털이 빠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나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25살에 현역병으로 군대를 갔다. 군 복무 시절엔 머리털을 짧게 깎고 지내는 통에 머리털이 시나브로 빠진 줄 몰랐다. 27살에 제대를 하고 나서야 내 머리털이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고민 끝에 가발을 썼다. 가발을 쓰고 사회생활 하는데 불편한 점이 많았다. 수습기자 땐 가발을 벗지도 못한 채 넉 달가량 서울 시내 경찰서에서 먹고 잤다. 소나기나 강한 바람이 불면 가발이 망가질까봐 안절부절못했다.

그렇게 10여년 가발을 쓰다 마흔 무렵 봄날에 가발을 벗어버렸다. 남자 나이 마흔이면 대머리로 지내도 견딜 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착각이었다. 내 경험에 비춰 보면, 대머리는 준장애인 취급을 받는 사회적 소수자다.

미혼 여성들은 대머리 남성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 2년 전 20·30대 미혼 여성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애인에게 탈모가 생기면 결혼 여부를 다시 고민하겠다”고 대답한 여성이 61%나 됐다. 20·30대 남성 탈모 환자 중에는 결혼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최근 탈모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 딸에게 상처를 주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딸은 “친구 아빠들은 머리털이 많은데 아빠는 머리털이 없다”며 속상해했다. 몇달 동안 탈모 치료를 받았더니 사막 같았던 두피가 풀이 듬성듬성 난 열대초원 사바나처럼 변했다. 20대 초반의 열대우림 아마존 같은 머리털 상태를 회복하긴 어렵지만, 예전보단 겉모습이 훨씬 나아졌다. 문제는 탈모 치료약 복용을 중단하면 머리털이 다시 빠진다는 것이다. 고혈압 환자가 평생 약을 먹어야 하듯이 탈모 환자도 어렵게 다시 난 머리털을 지키려면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내 경우엔 한달 약값 등이 7만원가량 든다. 이 돈을 평생 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무척 부담스럽다. 또 모발 이식수술 비용은 탈모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든다. 비용이 싼 중국이나 터키에서 모발 이식수술을 받는 탈모 환자들도 있다. 대부분 탈모 치료는 미용 목적이란 이유로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대상이다.

지난 8일 기획재정부는 세법 개정안을 통해, 신체 필수기능을 개선하는 목적이 아닌 미용 목적 성형수술 및 시술은 전부 부가가치세 10%를 물리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양악수술, 사각턱을 깎는 안면윤곽술, 여드름 치료, 모공 축소술, 기미·점·주근깨 제거, 미백, 제모, 탈모 치료 등 미용 목적 피부 관련 시술이 대상이다. 건강보험 적용도 안 돼 비싼 탈모 치료 등에 부가세를 새로 부과하겠다는 거다.

서민과 중산층 봉급생활자의 반발이 거세자 정부는 세금 부담 증가 소득기준 등 세법 개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했지만, 탈모 치료 등에 부가세 10% 부과 방침은 고수할 태세다. 기재부 관계자는 “탈모가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맞지만, 그렇게 치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성형수술을 해도 치료 목적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탈모가 죽을병이 아니니 치료비가 부담되면 생긴 대로 살라는 이야기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고통을 느끼지 않게 거위에서 깃털을 뽑는 수준이 이번 세제 개편의 정신”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내가 보기엔 세제 개편안은 거위의 깃털이 아니라 탈모 환자의 머리털을 뽑고 있다. 탈모 환자의 새 머리털에 부가세 10%를 물리는 게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국민행복시대인지 묻고 싶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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