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논설위원
한때 ‘박근혜의 창조경제’, ‘김정은의 속마음’, ‘안철수의 새 정치’가 3대 미스터리라는 우스갯소리가 장안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최근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담당하는 청와대 미래전략수석비서관을 경질하고, 안철수씨가 멘토인 최장집 교수와 헤어지는 걸 보면 그 미스터리는 아직 현재진행중인 것 같다.
‘모르는 세 가지’ 시리즈 중에서 이보다 더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게 있다. 바로 국제적으론 잘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만 모르는 세 가지 사실이 뭐냐는 물음이다. 답은 우리나라가 언제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지역이라는 사실, 우리나라가 국제 기준에 비추어 무척 잘 사는 나라라는 사실, 일본이 우리나라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강국이라는 사실이란다.
실제로 세계에서 우리만큼 일본의 존재를 가볍게 여기고 대하는 나라는 없다. 역사적으로 고대부터 우리가 중국에서 온 문화를 전수해줬다는 자긍심, 얼굴과 피부색이 비슷한 사람에게 혹독한 식민지배를 당했다는 치욕감 및 복수심, 도덕적 우월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현상일 것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민주화 및 경제성장, 냉전의 해체와 함께 찾아온 양국 간 국력 차의 축소는 일본에 대한 자신감을 더욱 키우는 배경이 됐다.
국력(국내총생산 기준)의 차가 1-50 정도였을 때 맺어진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상의 틀이 그 차가 1-5 정도로 줄어든 요즘에 요동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민주화와 함께 커온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은 ‘과거 청산 없는 한-일 협정 체제’에 근본적인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당시에는 잠잠했던 일본군 군대위안부 문제의 부각이 대표 사례다.
그렇다고 일본의 국력을 ‘등신대’로 보지 않고 우리 식대로 축소해 보는 것은 두 나라 간에 얽혀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유도 경기에서 그러하듯이, 강한 상대를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상대가 나보다 얼마만큼 강한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한-일 간에는 몇 가지 중요한 현안이 놓여 있다. 가장 큰 것이 역사 인식이다. 그에 못지않은 게 중국의 급부상 및 북한의 도발에 대한 지역 차원의 대응이다. 물론 경제와 환경, 에너지, 문화 등의 협력도 긴요하다.
지금은 이 모든 게 일본의 퇴행적 역사인식에 꽉 막혀 있는 형국이다. 큰 원인은 복고적 국수주의를 내건 아베 신조 정권이 제공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인식을 다른 문제 해결의 전제조건화 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경직된 자세에도 문제가 있다. 박 대통령은 역사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것이지만 다른 현안은 시급을 요하는 사안이라는 점을 고려해 대일전략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과연 일본과 계속 냉랭한 관계를 유지한 채 중국과 따스하게 지내는 게 변화무쌍한 동북아 구도를 살아가는 데 유리한 것인지,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아시아 회귀와 중국 견제를 앞세우는 미국이 일본의 퇴행적 역사인식은 비판하면서도 보통국가화는 지지하는 복잡한 사정도 간과해선 안 된다.
우리의 활로는 ‘사이’에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 중국과 일본 사이, 미국과 북한 사이 등등. 이런 외교를 하려면 역사와 국익 사이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일본 문제를 풀어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쉬운 일 중 하나가 일본 비판이다. 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던진 대일 메시지가 공허하게 들리는 건 그 역시 쉬운 길만 선택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오태규 논설위원ohtak@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무덤인데…일 “근대화 상징” 관광개발
■ ‘짝퉁’ 종결자!… ‘개’를 ‘사자’라고 속여 전시한 중국 동물원
■ 1천억 피해 소문만 무성…하나대투 직원 ‘금융사고 미스터리’
■ [화보] 나 혼자 ‘같이 사는 집’ 구경하세요
■ [화보] 5월 광주처럼…이집트 시위대 유혈진압
■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무덤인데…일 “근대화 상징” 관광개발
■ ‘짝퉁’ 종결자!… ‘개’를 ‘사자’라고 속여 전시한 중국 동물원
■ 1천억 피해 소문만 무성…하나대투 직원 ‘금융사고 미스터리’
■ [화보] 나 혼자 ‘같이 사는 집’ 구경하세요
■ [화보] 5월 광주처럼…이집트 시위대 유혈진압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