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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거위털부터 뽑아라 / 정영무

등록 2013-08-22 19:02

정영무 논설위원
정영무 논설위원
<한국방송>의 신년기획 ‘혁신으로 이룬 복지, 스웨덴’ 편을 다시 찾아 봤다. 책으로만 봐온 스웨덴의 복지를 시민들의 실생활에서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해준 수작이다. 연초만 해도 스웨덴이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던 게 새삼스럽다.

자동차공장의 젊은 노동자는 월급 500만원의 30%를 세금으로 떼고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주거비가 거의 들지 않고 의료·교육비는 없다. 그리스, 튀니지, 말레이시아, 타이. 노동자 부부가 1년에 주어지는 5주간의 유급휴가를 이용해 다녀온 곳들이다.

다른 자동차공장에서 해고된 노동자는 재취업 과정을 밟고 있는데 실직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다. 10개월간 다달이 170만원씩 나오는 실직수당에 더해 세 아이의 아동수당 60만원이 통장에 들어온다. 그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스웨덴 기업들은 법인세 외에 31%의 고용주세를 따로낸다. 이 돈과 세율이 30~50%에 이르는 소득세가 주요 복지재원이다. 기업이 세금을 많이 내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게 우리의 상식이다. 하지만 스웨덴 기업인들은 진정한 경쟁력이란 임금수준이나 세금이 아니라 생산성에 달린 문제라고 본다. 생산성을 높이고 혁신을 끊임없이 이뤄낸다면 비용이 더 들어도 미래가 있다고 한다.

스웨덴에서 볼 때 한국은 조세 천국이다. 2010년 소득세로 거둔 돈은 스웨덴이 국내총생산의 12.8%에 이르는 데 비해 한국은 3.6%로 훨씬 적다. 평균 소득인 월급 350만원을 받는 한국의 3인 가구 가장의 경우 실제로 내는 소득세는 연봉 4200만원의 2.7%인 113만원이다. 법인세 또한 지속적인 세율 인하와 공제 혜택으로 실효세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는 고용주로부터 직접 시장임금을 받고, 국가를 통해 제도적으로 사회임금을 얻는다. 스웨덴 노동자들이 고용과 생계 불안이 훨씬 덜한 것은 사회임금이라는 완충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낸 금액만큼 받는 시장임금과 달리 사회임금은 부등가 교환에 뿌리를 둔다. 건강보험처럼 소득 능력에 따라 내고 복지 필요에 따라 받는다. 2010년 한국의 평균 가구에서 가계 운영비 중 사회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5.0%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은 한국의 2배고, 스웨덴은 3배가 넘어 시장임금과 거의 맞먹는다고 한다. 사회임금은 물론 세금에서 나온다. 시장임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사회임금을 늘리는 게 한국의 과제다.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봉봉세(봉급쟁이를 봉으로 보는 세제안)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소득세만 놓고 보면 칭찬받을 만했다. 소득공제는 과세표준 자체를 낮춰 세율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있다. 이를 세액공제로 바꾸면 고소득자가 세금을 더 물고 규모가 작은 소득세 세수 또한 늘어나게 된다. 중산층의 부담을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에 소득세 개편안을 뒤로 물린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논란의 핵심은 돈을 잘 버는 기업이나 자산소득이 많은 부자들에게 제대로 과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답을 찾지 않고 제대로 방향을 잡은 소득세마저 물린 것이야말로 세금에 대한 폭탄이다. 사회임금을 늘릴 기회를 막은 복지에 대한 폭탄이다.

“모두가 세금 내는 게 가장 중요하며 이것 없이 스웨덴 시스템은 유지될 수 없다.” 라르스 다니엘손 주한 스웨덴 대사는 스웨덴에선 98.5% 이상 세금이 걷히고 한국에서는 70%가 걷힌다고 진단했다. 한국은 부자도 덜 내지만 중산층과 그 이하 계층도 덜 내고 있다. 거위털부터 뽑아도 좋다. 나도 낼 테니 당신도 내시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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