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경기도교육감
교육과 행복, 또는 학교와 민주주의라는 말의 배열을 조화롭기는커녕 적대적인 것으로 느끼는 분들이 많다. 서열화·양극화가 지배하는 교실은 일부 아이들에게 그저 잠이라도 자면서 견뎌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행복한 교육,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학교는 1%와 99%로 양분된 사회가 아니라 100%로 합쳐진 사회에서 제대로 구현된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교육 등 보편적 교육복지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일고, 그 담론이 대선 공약으로 이어지고, 그 공약을 내세워 당선된 정부가 실천을 고심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보편적 복지 확대는 교육 양극화를 해소하고 무한경쟁을 완화하여 학교에서 행복과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원 마련 방식과 부담의 주체, 그리고 아직도 보편적 복지를 퍼주기로 인식하는 일부의 몰이해이다. 복지가 선택적 방식으로 시행되면 재정난이 닥칠 때마다 토건이나 전시성 행사가 아니라 무상급식 같은 복지정책이 가위질 1순위가 될 것이다.
미국은 내년 예산안에 버핏세라 불리는 공정분배세 도입 계획을 담아 제출했다. 프랑스와 일본도 나란히 고소득자 세율을 45%까지 높였다. 이 나라들은 증세를 통해 분배정의를 확립함으로써 재정 위기와 사회 양극화에 대처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와 다르게 우리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 확대’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논리를 내세운다. 공제액 축소나 탈세, 세금 누수를 줄여 복지재원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살펴보자. 우리의 국내총생산 대비 소득세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의 절반에 못 미친다. 고소득 계층의 실질 세금부담률은 계속 낮아지고 가계소득 증가율은 기업소득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를 바로잡지 않고 제대로 된 복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앙정부는 복지를 확대한다고 ‘발표’하고, 지방정부는 줄어드는 세수에도 불구하고 ‘뒷감당’을 해야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지방정부가 저항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경기도청이 내년도 친환경 무상급식 관련 지원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복지와 재정, 복지와 증세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서울시청의 무상보육 재원에 대한 항의도 마찬가지다.
경기도의 친환경 무상급식은 많은 어려움을 거치면서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보편적 복지의 상징이다. 아이들의 평화와 평등을 상징하는 ‘밥상 정책’이다. 이 정책과 관련한 예산 삭감을 시도하는 것도 매우 상징적이다. 복지의 개념을 보편이 아닌 선택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가 누리는 복지 혜택은 재정 부족이라는 이유가 발생하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복지가 후퇴하면 사회적 안전망은 더욱 느슨해지고 양극화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변화된 시대 상황에 맞게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해왔다. 갈 길은 명료하다.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면서 공약한 복지정책을 이행하려면 고소득자 중심으로 증세를 단행하는 수밖에 없다. 세수 확보를 전제로 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함께 복지정책을 조율하고 확대해나가야 한다.
많은 국민들은 보편적 복지 확대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잘 이해한다. 충분함을 넘는 고소득자는 그에 합당한 세금을 내고, 보통사람들도 혜택만큼 자기 몫을 부담해야 한다는 상식을 받아들인다. 정직한 분배의 원칙만 지켜진다면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설득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복지 문제는 정공법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 복지 증세를 해야 한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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