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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현대차 파업을 바라보며 / 김의겸

등록 2013-08-29 18:57

김의겸 논설의원
김의겸 논설의원
1987년 이후 몇 년 동안 울산 노동운동의 지도자였던 권용목의 회고록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높은 데 올라가서 깃대 하나 꽂고 고함만 질러도 몇천명 몇만명이 모였다. 그때는 10명만 모여서 공장 한 바퀴 돌면 2천명이 되고, 두 바퀴 돌면 1만명이 되고, 세 바퀴 돌면 2만명이 모였다.” 어디 현대 계열사뿐이랴. 협력업체 노동자들도 쌈짓돈을 모아 <한겨레>에 파업 지지 광고를 실었던 기억이 난다. 현대 노조가 정부의 임금 억제 정책을 돌파해내면, 그 혜택이 전체 노동자에게 골고루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3년 8월 현대차 파업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싸늘하기만 하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부러움을 넘어 이젠 아예 딴 세상 일로 여겨버린다.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2조원이라는 과장 보도가 나와도, 진보 진영에서 그 흔한 반박 성명 하나 나오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유형근 박사는 기업별 노조라는 태생적 한계에서 원인을 찾는다. 당시는 울산 내의 중소기업과 함께하는 지역조직도 없었고, 산별노조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업별로 흩어져 투쟁을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기업의 크기에 따라 임금 격차가 확대되고 그건 또 노동계급 내부의 이질화를 낳았다는 것이다. 현대차 노조로서는 그저 20여년 동안 고난을 무릅쓰고 싸워왔다. 그리고 이겼을 뿐이다. 그러니 자신들을 향한 손가락질이 억울하기만 한 것이다. 성공의 역설이다.

그래도 해고 위험이 없는 탄탄한 직장과 1억원에 가까운 고임금이 순전히 자신들의 힘만으로 일군 건지는 따져볼 일이다. 우선 고용의 안정성 문제다. 1998년 외환위기 때 현대차는 전체 인력의 22%에 해당하는 1만여명을 잘라버렸다. 노조가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 싸워서 따낸 게 2000년의 ‘완전고용 보장 합의’다. 회사가 정규직의 고용을 확실히 보장하는 대신 노조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비율을 16.9% 선에서 허용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누가 희생될지를 분명히 밝혀놓은 비인간적인 문서다. 그래도 정규직은 이를 포기할 수 없다. 자동차 산업의 수요는 일정하지 않고, 경기가 나빠지면 고용조정이 불가피해지는 자본주의 현실에서 깨달은 생존 본능이다. 또 비정규직의 처지(평균 연봉이 5400만원이라는 게 회사 쪽 설명이다)가 3천만원짜리 연봉이 수두룩한 협력업체 직원보다는 한결 낫다는 현실도 정규직을 냉정하게 만든다. 정규직이 에어컨을 쐬고, 협력업체 직원이 땡볕에서 일한다면, 비정규직은 선풍기 바람 정도는 맞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눈을 아예 공장 밖으로 돌려 협력업체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방안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싶다. 정규직의 두툼한 월급봉투에는 수많은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땀방울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회사 쪽에 이익의 30%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그 30%의 30%쯤을 중소규모 납품업체와 나누자고 단체협약 1번 요구사항으로 내걸고 압박하는 것이다. 납품업체 사장 배만 불리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까지 현대차 노사가 함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장 수십만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반색을 할 테고, 냉담했던 국민들도 따뜻하게 돌아볼 것이다. 물론 정규직들의 임금이 동결되는 정도는 감내해야 할 것이다.

강권할 생각은 없다. 이런 이익공유제나 비정규직 해소 등의 문제를 풀어야 할 주체는 일차적으로 정치권이지 노동조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가 무능하니, 숙제를 노조에 지우는 우리 현실이 딱할 뿐이다. 그래도 87년을 겪어본 세대로서, 현대차 노조가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다시 설 것이라는 ‘낭만적 상상’을 쉽게 떨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김의겸 논설의원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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