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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권은희 과장과 내부고발자 보호 / 정민영

등록 2013-09-01 19:12수정 2013-09-01 21:01

정민영 변호사
정민영 변호사
어렵게 열린 국가정보원 국정조사가 지지난주 결국 허망하게 끝났다. 늦저녁까지 중계를 보면서 헛헛했다. 여당 의원들은 사건에 가담한 자들을 엄호하기 바빴고, 야당 의원들은 그저 무기력해 보였다.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건 고사하고, 국정조사 이전에 이미 명백하게 밝혀진 사실까지 진실 게임의 회오리에 다시 휘말려 들어간 느낌이었다. 증인으로 나선 경찰과 국정원 간부들은 외려 당당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실망스러웠다.

그 와중에서 가장 빛났 건 권은희라는 경찰관이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을 수사한 그는, 경찰 고위 간부의 부적절한 외압이 있었다고, 그것이 대선을 염두에 둔 압력 행사였고 그래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담담하게 증언했다. 함께 증인으로 나온 다른 경찰관 14명은 경찰 수사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권 과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여당 의원들이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으며 몰아붙였지만 권 과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국정조사가 끝나고 그의 소신 있는 태도에 박수가 터져나왔다. “한명의 권은희를 지켜내야 열명의 권은희가 나옵니다. 권은희를 왕따시키려는 조직, 그 배후의 권력을 국민이 왕따시켜야 합니다.”

내가 권 과장의 가족이었다면 그를 말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 내부자의 고발은 ‘어둠 속의 도약’과도 같다. 고발을 시도하는 자들은 뛰어오르자마자 고꾸라진다. 고꾸라진 곳이 어두운 탓에 그들은 자기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조차 어렵다. 고발당한 조직은 고발을 반성과 개선의 계기로 삼기보다, 고발한 자를 색출해 응징하는 데 혈안이 된다. 외국도 비슷하다. 선진국이라는 곳에서도 내부고발자를 왕따로 만들고, 이를 본보기로 남은 사람들을 겁박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고발한 자를 어떻게든 사회가 보호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많은 나라들이 공익 신고나 부패 신고를 한 사람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한참 늦었지만 2011년부터 공익신고자보호법을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신고한 자들을 보호하기엔 우리의 제도가 아직 너무도 허약하다는 사실이다. 우선, ‘공익 신고’에 해당한다고 인정받는 것 자체가 매우 까다롭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보호받을 수 있는 신고 대상을 식품위생법 등 180여 분야로 한정하고 있다. 만일 당신이 사립학교 재단의 비리를 고발한다면? 사립학교법에 관련된 문제는 공익신고자보호법이 규정하는 공익 신고가 아니어서 비리를 신고하더라도 보호받지 못한다. 사학 재단의 비리를 고발했던 김형태 서울시의원은 결국 공익신고자보호법의 테두리 밖에서 혼자 싸워야 했다. 결국 우리 법은 자기가 신고하려는 행위가 180개 분야에 해당되는지 아닌지 꼼꼼히 살펴보고 신고할지 말지 정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공익 신고 내지 부패 신고’에 해당하는 신고가 충분히 보호받는 것도 아니다. 조직은 어떻게든 고발한 자를 응징하려 한다. 갖가지 이유를 들어 교묘하게 불이익을 가하고, 그것이 고발에 대한 앙갚음인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내부고발자에 대한 불이익 조처가 문제되었을 때, 그것이 고발로 인한 보복이 아님을 불이익 조처를 한 기관이 스스로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법원은 고발자를 보호하는 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에 불이익 조처가 고발로 인한 것임을 입증하라고 하고, 입증에 실패한다면 고발자에 대한 보호는 위법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고발자가 법을 보호막으로 삼아 부패와 비리를 적극적으로 신고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란 어렵다.

많이 잊혀졌지만, 세계적인 기업에 다니던 어느 여성 직원이 1년 넘게 상사에게 지속적인 성폭력에 시달린 일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그는 회사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다. ‘왕따’를 당하면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한 그가 법원에서 승소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1년이다. 결국 이겼지만 이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는 서글픈 자조와 한탄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싸워보기도 전에 입을 틀어막히고, 지기만 한다. 부패와 부정에 대한 고발과 신고는 더 보호받아야 한다.

정민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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