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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극우·극좌의 적대적 공생 / 김재홍

등록 2013-09-02 19:37수정 2013-09-02 22:13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정보원이 또 한 건을 터트려 온 국민을 놀라게 했다. 사람들은 보수언론들이 규정하듯이 ‘이석기 사태’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국정원 사태’라고 해야 온당한지 헷갈린다. 지난번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대화록의 불법 공개 사태와 동일한 연속선상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정원이 궁지에 몰리자 준비해 둔 ‘히든카드’ 중 두 번째를 깠다는 것이다. 지금도 국정원 규탄은 전국의 대학, 노조, 종교, 시민단체에서 번져나가고 있다. 해외의 유학생과 교민들도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자 처벌과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확산되고 있다.

이 불길을 끄기 위한 국정원의 대응책이 내란음모 수사라는 것이다. 많은 여론층은 마치 1980년 전두환 공안합동수사본부(합수부)가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운동이 일자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터트린 것을 연상한다. 박정희 독재 반대운동이 번지자 중앙정보부가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73년 민청학련과 인혁당의 체제전복 음모를 엮은 것과 유사한 모양새가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는 국정원의 전신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와 중앙정보부에 의한 정치공작으로 숱한 굴곡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1987년 대선 전에 발생한 칼(KAL)기 폭발 및 선거 전날 폭파범 김현희의 압송, 92년 대선 직전 안기부가 발표한 거물 간첩 이선실 및 남조선노동당 사건은 보수진영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북풍 사건으로 기록됐다. 또 96년 4·11 총선 며칠 전 판문점의 북한군 무력시위와 97년 대선에 앞서 집권 측이 북측에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청한 총풍 공작도 있었다. 세계적 정론지 <뉴욕 타임스>가 지난달 28일 “국정원 연루 사건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마녀사냥(a witch hunt)에 기대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 것도 국정원의 그런 전력 때문이다. 지금의 정국 상황은 역사전개 법칙이라는 도전과 응전을 이미 넘어섰다. 정보기관의 본령 파괴에 대한 민주시민과 야권의 옥쇄로 비화했다.

국정원이 공개한 내란음모 사건은 국정원 자신과 이석기 그룹 이외에 누구도 그 진상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아직 반국가 범죄라거나, 아니면 국정원의 과잉수사 또는 날조라고 말할 근거는 없다. 합법적 수사를 거쳐 사법부 판단에 맡기면 된다. 다만 ‘피의자 국정원’이라는 규탄 소리가 널리 번지는 마당에 그 국정원이 한 극좌세력의 망상적 언행을 문제 삼아 내란음모라는 폭탄을 던진 양상이다.

국정원이 내란음모 사건을 공개수사하면서 또다시 자신의 대선공작 혐의를 국가안보 업무라며 면책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럴수록 국정원 대선공작 사건이 파묻히지 않게 더욱 촛불을 움켜잡는 것이 민심이다. 극좌세력을 척결하는 임무 때문에 국정원의 극우 노선에 기반한 민주주의 훼손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는 의지다. ‘극좌’ 때문에 ‘극우’가 구출되는 기묘한 상황에 혼란스럽긴 하지만 국정원의 환골탈태는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엔 변함이 없어 보인다. 따지고 보면 우리 현대사는 극우와 극좌의 적대적 공생관계로 휘둘려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양식 있는 시민사회에 충분히 살아 있었다.

지난 주말 서울역광장에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국정원이 내란음모를 수사한다고 해서 대선개입 책임이 결코 파묻혀선 안 된다”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라고 정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럴 때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국민 다수가 어떤 생각을 할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것이 국태민안의 관건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를 훼손한 정보기관이 자유민주체제 수호를 내세워 그런 방식으로 계속 대북심리전 활동을 하고 또 내란음모를 수사한다면 어느 국민이 용납할 것인가.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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