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시 ‘잠꼬대’를 쓰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썼는데, 현경한테 보이니 발표해도 되겠느냐고 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언론자유에 대한 고발장인데, 세상의 오해 여부는 고사하고, <현대문학>지에서 받아줄는지가 의문이다. 거기다가 조지훈도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는가? 이 작품의 최초의 제목은 ‘김일성만세’, 시집으로 내놓을 때는 이 제목으로 하고 싶다.”
시인 김수영의 1960년 10월6일 일기다. 얼마 뒤 시인은 이 시를 <현대문학>에 보내지만 아내 김현경의 걱정대로 실리지 못한 원고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시인이 세상을 뜬 지 40년이 된 2008년에야 이 시는 <창작과비평>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시 전문)
4·19 혁명의 수혜를 받은 장면 정권이 반공법을 존치하려 한 데 대한 시인의 반감이 시의 배경이다. 4월26일 아침에 쓴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는 격정적 시에서 “민주주의는 인제는 상식으로 되었다/ 자유는 이제는 상식으로 되었다/ 아무도 나무랄 사람은 없다/ 아무도 붙들어갈 사람은 없다”며 혁명에 환호했던 그였기에 실망감이 더욱 컸을 것이다. 이후 53년이 지났지만 보안법은 아직 그대로다. 시인의 아내는 올해 펴낸 <김수영의 연인>이란 책에서 ‘김일성만세’가 사상의 자유에 관한 시임을 언급하며 “수영이 떠난 지 45년이 흐른 지금, 이런 그의 외침이 여전히 우리를 깨우는 현실이 반갑기도 하고, 한편 슬프기도 하다”고 썼다.
시인의 바람대로 만약 보안법이 진작에 개폐됐다면 어땠을까. ‘주사파 천국’이 됐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테지만 그 반대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석기 그룹’을 보자. 이들의 북한에 대한 맹목적 추종은 녹취록에 나오는 그대로다. 쓰는 단어에서도 망상적 사고가 묻어난다.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가 없었다면 이들은 이런 주장을 광화문에서 대놓고 외칠 수 있었을 테고, 광신도 취급을 받으며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됐을 거다. 대중의 외면을 받는 집단의 리더가 국회의원이 되는 일도 없었을 거다. 이들이 상식과 보편이란 햇볕에 노출되지 않은 채 폐쇄와 고립의 음지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차단막 구실을 한 게 바로 보안법 7조다.
이석기가 속했던 민혁당 총책으로 방북까지 했다가 전향한 뒤 지금은 북한인권운동을 펴고 있는 김영환도 7조 폐지론자다. 이석기 사건 이후에도 같은 견해를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해 그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그래도 보안법 7조는 폐지해야 한다. 이적표현물 제작이나 찬양·고무를 사법적으로 처벌해봤자 효율성이 떨어진다. 7조는 이석기 그룹이 3대 세습 문제, 북핵 문제 등에 대한 공론화를 피할 수 있는 구실만 준다. 이들이 비밀 모임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 있도록 하면 국민에게서 고립될 것이다. 사상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에도 위배되는 측면이 있다. 일반적인 국가라면 이런 조항으로는 처벌 안 한다. 국격을 높이려면 7조는 폐지하는 게 옳다.”
보안법 7조가 폐지되면 국정원은 역할이 축소된다. 인력과 예산 감축도 불가피하다. 댓글 같은 것을 달면서 선거에 개입할 여력도 줄어들 거다. 어쩌면 보안법 7조로 이득을 보는 건 좌우 극단에서 해악을 끼치고 있는 두 집단, 이석기 그룹과 국정원인지 모른다.
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sk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