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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서울과 시네마테크의 만남 / 이지현

등록 2013-09-08 19:17

이지현 영화평론가
이지현 영화평론가
지난밤의 회합이 어땠는지는 아침이 되어 남겨진 음식이나 식기의 위치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는 베냐민의 말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태양의 열기가 식으니 이제야 올여름의 무더위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영화계는 한창 야회를 준비중이다. 지난 5일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는 말로만 설명하던 부산 이전을 정말로 실행에 옮겼는데, 생각해보면 2004년부터 들어왔던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영등위의 발표에 따르면 오아르에스(ORS) 시스템이라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앞으로도 지금처럼 무난하게 업무가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막상 등급 판정을 받으려는 업자들의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부딪힐 문제들이 생길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데 있다. 곧이어 10월에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부산으로 이전되고, 이후 남양주 종합촬영소 역시 이전할 예정이다.

영등위와 다르게 영진위와 관련된 기관들은 실질적으로 영화인들과 만나는 범위가 넓다. 좁게는 후반작업이나 제작지원 업무부터 넓게는 정책연구나 촬영 실무에 이르기까지, 접촉면이 실로 다양하다. 실질적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의 비율이 월등히 많은 현재의 상황에서 이런 업무들과 관련한 체계가 어떻게 달라질지는 이후에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벌써부터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이나 지역화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불안이란 자고로 미래를 향한 것이니 체감되는 말들은 아니다. 이 밤의 회합이 안고 있는 불안은 아침이 되면 어떤 형태로든 실체를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공감할 수 있는 반감, 혹은 반감적인 공감이라도 좋다. 부디 공간 이전을 계기로 삼아 지금보다 더 나은 공감대를 끌어내주길 바란다.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이 진행되는 사이, 한편에서 서울시는 5000㎡ 규모의 시네마테크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차례 예산 문제로 수포로 돌아간 전례가 있는 사업이다. 시네마테크의 경우, 현재 그 역할이 상암동과 낙원동 등지로 분산되어 있다. 다시 말해 국내에 제대로 된 시네마테크가 없는 실정이다. 파리와 도쿄의 사례가 일러주듯, 체계화된 시네마테크의 건립은 한 단계 발전한 문화소비의 행태를 일반에 전파할 것이기에 중요하다. 서울아트시네마와 영상자료원의 업무는 상징적으로 통합되어야 할 것들이며, 이왕이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처럼 특별전과 전시사업 등 문화적 업무가 동시에 진행될 수 있는 안정적인 규모라면 더 좋겠다.

현대에 이르러 공간의 개념은 장소와 역사가 중첩되고, 실재와 상상이 전략적으로 결합하는 표현주의적 개념으로 변모했다. 이런 변모가 영화와 만났을 때 의미는 더욱 커진다. 영화는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장치에서 시작된 예술이며, 이 이야기들이 한 장소에서 상영되고 공유되며 발전해왔다. 지금 서울의 극장들은 이야기가 잠시 머무르는 플랫폼에 불과해 보인다. 시네마테크는 이를 뛰어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작가 도미니크 노게즈는 영화의 기쁨이 영화관에 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극장에서 영화가 이끄는 욕망들과 마주하고, 이러한 욕망이 개인의 현재와 만나 인생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시네마테크는 극장이 소화할 수 없는 개인적 이야기의 역사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실체를 뛰어넘어 사고를 창조해내는 상징적인 공간, 시네마테크의 건립이 절실한 이유다.

이지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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