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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문제는 핵이다 / 오태규

등록 2013-09-10 18:35수정 2013-09-10 22:17

오태규 논설위원
오태규 논설위원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과 그의 동지들이 벌인 ‘집체극’을 보면서 두 가지 장면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나는 사이비 광신도들의 부흥회이고, 또 하나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다.

이 의원이 강연하면서 중간중간 던지는 질문에 “예, 예” 하며 호응하는 참석자들의 모습은, 사이비 종교 교주의 설교에 “아멘, 아멘” 하며 감읍하는 맹신도의 행태를 영락없이 빼닮았다. 그 개인에 초점을 맞추면, 기사도와 관련한 책을 너무 탐독한 나머지 풍차를 거인으로 알고 덤빌 정도로 맛이 간 돈키호테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에게 돈키호테의 둘시네아 공주는 북쪽의 ‘김씨 일가’, 기사도 서적은 ‘주체사상’, 거인으로 착각한 풍차는 ‘남쪽 정권 및 미 제국주의’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두 인물이 매우 비슷한 성향을 지녔음에도 돈키호테는 풍자와 재미를 주는 희극적 인물로, 이 의원은 공포와 불안을 주는 아마겟돈적 괴물로 다가온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왜 그럴까? 나는 핵 문제에 대한 이 의원의 독특한 관점이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고 본다.

그는 북의 핵실험과 핵무기 개발에 대해 철저하게 긍정적 입장을 취한다. 그가 발언했다고 전해진 녹취록을 보면, 모두 강연 부분에 “당연히 물론 이후에 사회단체에서 탈핵을 논하는 거, 나는 반대해요. 핵은 쥐고 있어야 돼. 민족사적인 재고인데 어마어마합니다”라는 ‘어마어마한’ 대목이 나온다.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대표되는 ‘핵 민족주의’의 관점과 다를 게 없다. 더 나아가 북핵에 대응해 남쪽에도 전술핵을 들여와야 한다거나 핵무기 개발까지 염두에 두며 우리도 핵 주기를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우파의 주장과 논리구조가 같다.

이런 인식은 두 가지 점에서 큰 결함이 있다. 하나는, 생태계 유지와 평화라는 인류 공영의 가치와 정면 배치된다는 점이다. 2011년 3월11일 쓰나미(지진해일)와 함께 들이닥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재앙은 ‘무기든 발전소든 핵은 인류 생존의 적’이라는 걸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웃의 3·11 참사를 뻔히 보고도 핵과 경제발전, 핵과 진보의 병존을 주장하는 세력이나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무지한 자다.

둘째, 핵 민족주의로는 절대 분쟁을 억제하거나 평화를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힘이 없는 나라가 힘이 강한 나라와 민족주의로 맞서 이길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쉽게 수긍할 것이다. 민족주의 앞에 ‘핵’ 자가 붙는다고 그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 북이 핵무기를 가졌다고 해도 그것은 패망을 부르는 무기에 불과하다. 이것은 ‘친남’ 핵 민족주의자에도 똑같이 해당한다.

‘바보야, 문제는 핵이야’라는 화두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다. 인류 생존과 직결한 긴급 과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문제는 생태 및 평화에 관심과 조예가 깊은 진보 진영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다. ‘이석기 이후’ 진행될 진보의 재구성 과정에서 핵 문제는 당당히 중심을 차지해야 마땅하다.

3·11 재앙을 방치해온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20 도쿄올림픽 유치에 환호할 게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한다. 원전을 수출하러 중동과 동남아, 동유럽을 뻔질나게 돌아다니기에 앞서 피해자인 세계시민에게 백배사죄해야 옳다. 박근혜 대통령도 안에서 줄줄 새는 원전을 팔러 다니는 세일즈 외교가 국제적 조롱거리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감핵, 탈핵, 반핵을 에너지 수급 및 삶의 질 유지와 얼마만큼 현실감 있고 긴장감 있게 결합시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느냐에 진보의 미래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태규 논설위원 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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