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무 논설위원
청와대가 포스코와 케이티 회장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는 얘기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포스코는 이달 초 세무조사가 전격적으로 실시됐다. 정기 법인세조사라고 하지만 특수부대 격인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요원들이 투입된 것만 봐도 예사롭지 않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나 청와대 재계 간담회 때도 초청인사 명단에서 빠져 뒷말이 많았다.
포스코와 함께 민영화된 공기업의 양대 축인 케이티는 더 벼랑 끝이다. 청와대가 이석채 회장에게 조기 사퇴를 타진했으며 이 회장이 버티고 있는 모양새라고 한다. 이 회장도 좌불안석이지만 이런 내막이 불거지는 바람에 청와대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포스코와 케이티가 최고경영자 리스크를 달고 사는 것은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 정 회장의 전임인 이구택 회장은 임기를 1년여 앞두고 옷을 벗었다. 정 회장은 최고경영자 추천위원회에서 경쟁자가 자신은 들러리라고 주장해 외압 논란에 휩싸였다. 케이티 이 회장의 선임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다. 2009년 당시 대표이사를 공모할 때만 해도 이 회장은 후보 자격이 없었다. 경쟁업체 사외이사를 지낸 경력이 문제됐으나, 케이티 이사회는 정관까지 고쳐 이 회장을 후보에 올렸다.
포스코 정 회장은 실적으로 평가받겠다며 사업 다각화에 힘을 쏟았다. 그에 대한 우호적인 평가도 있는 반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체력을 약화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케이티 이 회장은 정치권 인사 마구잡이 영입, 직원들의 자살 행진 등으로 훨씬 시끄럽다. 단기 실적에 치중해 장기성장성을 훼손함으로써 최고경영자 리스크가 문제라는 불명예도 붙어다닌다. 이러니 거취 논란이 따르는 것도 이상할 리 없다. 이 회장이야말로 퇴진시켜야 한다거나, 청와대의 눈총은 정 회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분리대응론도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연임한 두 사람이 3년 임기를 꿋꿋이 채워야 한다고 본다. 포스코와 케이티는 10여년 전 민영화돼 정부 지분이 없다.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라고 했듯이, 민간에 넘겼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놔두는 게 옳다. 해당 기업의 이사회와 시장경쟁, 사법적 규율에 맡길 일이지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 국정철학을 내세운 교체론은 뒤집어보면 자리 욕심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낙하산 인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는 민간기업인 포스코와 케이티 인사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한편에선 재벌 총수들이 배임·탈세 등으로 줄줄이 구속돼 있다. 가장의 유고 상황에 비상경영위원회를 꾸려 대처하고 있으나 경영 공백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권한 위임이 안 돼 있어 대행자가 총수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엄살이다. 달리 말하면 총수 1인 체제의 낙후된 지배구조의 품속에서 살다 보니 결정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한 기업들의 첫 번째 성공요인으로 짐 콜린스는 리더의 경쟁력을 꼽았다. 또 3~5년 뒤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핵심인재 양성에 달렸다고 한다. 한국 기업은 지배구조가 낙후돼 있고 경영진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걸림돌이다. 낙점 인사에서 자율성과 책임성이 뿌리내리기 어려운 탓이다.
포스코와 케이티는 공기업 아니면 재벌밖에 없는 한국의 척박한 지배구조에서 성공해야 할 실험이다. 임기와 자율성을 보장해줄 테니 전범을 만들라는 게 민영화의 취지다.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주저앉혀서는 안 된다. 포스코의 지배구조는 외풍 없이 운영만 제대로 된다면 나무랄 데 없다. 도로 공기업으로, 재벌 체제로 돌아갈 수는 없다.
정영무 논설위원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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