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독수리상이 사라졌습니다. 오랫동안 연세대 백양로를 지켜온 독수리상이 해체되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낮잠을 자다 뽑혀 나간 자리엔 구덩이들이, 옮겨지지 못하고 잘려나간 나무들 자리엔 앙상한 밑동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지금 유서 깊은 백양로는 이렇게 공사중입니다. 1000여대를 수용할 주차장을 위해, 캠퍼스는 이렇게 호러영화 세트장이 되었습니다. ‘백양로 재창조 사업’이라 명명한 이번 공사를 위해 대학 본부는 동문들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모금활동을 벌이는 중입니다. 사정을 모르는 동문들은 이번 공사가 마땅히 한국 최고 대학에 재직중인 교수, 전문가들과 충분한 검증을 거친 사업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토론과 검증 단계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공사를 잠시 중단하라며 교수들이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현 총장은 원주캠퍼스 부총장 시절부터 함께 일해 온 건축회사 파트너와 그들만의 ‘전문성’ 수준으로, 교육의 질에 대한 고민을 제쳐두고 토건 사업에 몰두해왔습니다. 라이트 밀스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읽던 한 학생은 “우리 총장님은 ‘토건적 상상력’만 뛰어나신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탁월한 ‘토건적 상상력’으로 총장님은 유서 깊은 본교 캠퍼스를 파헤치기로 한 것이지요. 249명의 교수들이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자 총장은 단과대학별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도면을 공개하고 본격적인 공청회를 해야 할 시점에 대학별 ‘순시’를 도는 것은 여느 재벌그룹 회장이나 취할 행동이라는 빈축을 사며 말입니다. 교수들은 이러한 행보를 하버드대 로런스 서머스 총장의 독선이 퇴진으로 이어졌던 사태와 연결시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나 사업적으로 아주 탁월한 분이지만 독단적인 ‘사업적 상상력’은 대학에는 맞지 않는 것이었지요.
나무들이 베어진 것을 보고 한 여학생은 울음을 터트립니다. 전체 나무 649주 중 180주는 이식하고 469주는 베어지고 있습니다. 아주 큰 나무는 이전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잔 나무는 별 가치가 없어서, 암은행은 냄새가 나서 벤다고 합니다. 그 선발 기준이 마치 탁월한 학생들은 감당하기 힘들어서, 좀 느린 학생들은 느리다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향기를 가진 학생들은 냄새가 난다고 내치는 현 대학교육의 기준을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다행히 파헤쳐진 백양로를 오가며 많은 학생들이 ‘난개발의 시대’에 대한 생생한 현장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색이 짙은 것은 다 싫고 근거 없는 비난으로 트집 잡는 사람들이 특히 싫다던 학생도 이번 계기를 통해 무분별한 개발과 경쟁 사회에 자신이 내던져지듯 놓여 있고, 시야를 차단당한 경주마처럼 무작정 달려왔음을 인식하며 멈추어 서서, 되돌아보고, 여러 길로 돌아갈 줄 아는 곡선의 부드러움을 되찾고 싶어 합니다.
사태는 그리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양편이 추구하는 가치가 너무 다르고 또한 양편이 상당한 ‘확신범’들이기 때문이지요. 방법은 단 하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동문·교수·학생·직원을 포함한 연세 공동체 모두가 모여 정보공개를 하고 지혜를 나누는 릴레이 원탁회의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상의 방안을 찾아내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말입니다. 모두가 바쁜 피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여론 수렴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한국의 유서 깊은 명문사학 연세대학은 이 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대학은 그곳에서 청춘을 보낸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배움의 전당이며 마음의 고향입니다. 올 추석, 백양로가 키운 사람들이 호러 공사장에 모여 달맞이 축제를 엽니다. ‘백양로 재창조’는 포클레인이 아닌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각자 자기 동네를 지켜내야 할 때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닌 바로 여기 내 곁에 있는, 내 기억 속의 사람들과 함께 시간의 향기를 맡으며 살아내야 할 때입니다. 백양로의 기억을 가진 분들은 추석날 밤 백양로로 나들이를 오시지요. 만일 못 오신다면 한가위 달을 함께 보면서 ‘사람을 밀어주는 세상’을 위해 마음을 모아봅시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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