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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일본의 ‘침략 부인’과 올림픽 / 한승헌

등록 2013-09-21 18:34수정 2013-09-21 20:45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한-일 ‘사죄논쟁’ 68년의 궤적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할 때 나는 열한 살의 초등학교 5학년생이었다. 그 뒤 68년의 세월이 흘러 내가 ‘경로 우대’를 받고 있는 지금도 두 나라 사이의 ‘사죄논쟁’은 여전하다. 일본인의 국민성과는 달리 일본 정부는 과거 침략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를 한사코 거부한다. 이 점에서 독일과 너무도 다르다.

일본과 독일은 지난 2차 세계대전 때 각기 이웃나라를 침공했고 엄청난 인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나란히 패전했다. 그러나 전후에 다시금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여기까지는 서로 닮았다.

그러나 두 나라는 도덕적으로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침략전쟁의 죄과를 놓고 독일은 겸허한 사죄와 천문학적인 배상을 해온 데 비해서 일본은 사죄조차 거부하는가 하면 역공마저 서슴지 않았다. 독일은 역사의 망각을 엄중히 경계하는데, 일본은 역사의 망각에 그치지 않고 왜곡과 부정으로 질주해왔다. 한쪽은 평화를, 다른 한쪽은 군국주의를 추구한다.

여기서 내가 할 말을 눈치채고 앞질러 이렇게 물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 그 사과 요구냐? 한국 사람은 몇십년 동안이나 일본에 사과 요구를 반복하고 있느냐?”고. 여기에 대해서는 고 김대중 대통령이 명쾌하게 응대한 바 있다. “일본은 패전 후 50년이 되도록 한국에 진심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그러니까 사과 요구도 50년이나 계속될 수밖에 없지 않으냐?”

일본 집권자들은 주어(책임의 주체)도 분명치 않은 채 ‘불행했던 한 시기’니 ‘통석의 염’이니 하는 말의 곡예로 이중의 파렴치를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진정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명한 일본 수뇌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통렬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밝혀 올바른 역사인식으로 평가받은 1985년의 ‘무라야마 (총리) 담화’, 1993년의 ‘고노 담화’,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등에서 총리급의 사죄 표명이 나오긴 했다.

그러나 일본 지배층에서는 딴소리가 뒤를 이었다. 최근 아베 총리는 전임 총리들의 역사인식을 손바닥처럼 뒤집는 망언을 되풀이하여 비단 한국인뿐 아니라 일본 내부에서조차 비난을 샀다. 심지어 아베는 참의원 답변에서 “침략은 학문적으로 정의된 바가 없으며 어느 나라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괴상한 ‘극구부인’이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아베를 나무랐다. 심지어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도 아베의 역사감각 부재에 질렸다고 개탄을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8월20일 다하우 나치수용소 옛터를 찾아가 헌화하고 머리를 숙였다. 그 장면의 사진과 뉴스를 접하고 부끄러움과 가책을 느낀 일본 정부 지도자가 과연 있기나 할까? 강한 나라 일본은 이제 바른 나라를 지향해야 한다. 일본의 집권자는 역사에서 배우고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한다. 군국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호전성을 국익으로 착각하는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본의 위정자들이 한국 침략에 대한 궤변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저들의 평화헌법 뒤집기의 속셈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군국주의 근성을 드러내는 증좌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참사의 후속 위험에도 불구하고 2020년의 여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올림픽이란 온 세계가 함께하는 평화와 친선의 인류 제전이 아닌가? 일본이 과거에 침략했던 인근 나라들에 사과 대신 위협을 가하고 분쟁을 격화시켜 불안을 조성한다면 올림픽 개최국의 위상과 본분을 스스로 저버리는 자해행위가 되고 말 것이다.

무릇 역사적 과오를 자인하고 사죄하는 일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며, 일본의 국익과 신뢰 및 도덕성을 높이는 바른 길이 될 것이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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