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한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
최근 한달여간 모든 언론이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혐의 사건(이석기 사건)으로 도배됐다. 얼마 전 <중앙일보>는 이석기 사건을 변론하고 있는 변호인단 20여명 중 주축 변호사 7명의 명단과 소속, 경력을 공개하였다. 며칠 전에는 몇몇 보수단체 회원들이 변호인단이 속한 법무법인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이 변호사들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였다.
내가 이석기 사건을 동조하거나 그를 두둔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석기 사건은 현재 수사중이므로 수사와 재판을 거쳐 유죄가 확정되면 그에 상응한 처벌을 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공안사범이라 하더라도 압수·수색 단계부터 생중계를 하고 피의사실을 공표하여 여론재판을 하는 것은 피의사실 공표죄와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될 소지가 크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모든 피고인의 적법절차 보장, 진술 거부권,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 무죄 추정,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헌법에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다(12조·27조). 형사소송법은 단기 3년 이상에 해당하는 사건은 필요적 변호사건이라 하여 변호인이 없으면 재판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282조).
이는 곧 모든 범죄 혐의자는 법과 절차에 따라 수사와 재판을 받고 중한 죄일수록 반드시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라는 의미이다. 흉악범이나 파렴치범, 공안사범이라 하여 이런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되고 죄질이 나쁜 사람들이므로 대충 수사하고 재판해서 엄벌에 처하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수사 과정에서 보통의 범죄자에게 적법절차를 어기거나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불법적인 수사나 인권침해는 공안사범이나 흉악범, 파렴치범에 대한 수사에서 대부분 발생하므로 오히려 공안사범 등에게 위와 같은 헌법상의 규정들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피고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법 규정이나 가치 있는 형사 판례는 대부분 공안사범 변호인들의 투쟁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이석기 사건도 필요적 변호사건일 뿐만 아니라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헌법상 권리가 있다. 또한 변호사 윤리장전에도 ‘변호사는 의뢰인이나 사건의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19조).
아마 거의 모든 변호사는 이석기 사건, 왕재산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등 공안사건을 의뢰받아도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사건인데다 수임료도 거의 없고 수천쪽의 기록을 검토해야 하고 재판도 수차례 진행해야 하는 등 시간·노력·비용이 너무 많이 소요되므로 수임을 거절할 것이다.
변호사가 살인마 유영철이나 극악무도한 범인을 변호한다고 해서 그 변호사가 살인행위를 용납하고 살인범을 동조해서 변호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석기 사건의 변호인단이 이석기 사건을 동조하거나 용납해서 변론을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실비만 받고 수사·재판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헌법상의 적법절차를 보장하고 변호사 윤리장전을 준수하며 변호사로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변호인단에게 칭찬과 격려를 보내야 한다.
언론에서 이석기 사건의 변호인단 명단과 소속 등을 공개하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크고 그 저의가 매우 의심스럽다. 또한 변호사 사무실 앞에서 벌이는 보수단체의 시위는 헌법상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변호사의 변론권을 심하게 침해한 것으로서 매우 위험한 행동인 만큼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
민경한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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